일수의 탄생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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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한 유은실 작가의 네 번째 작품. 여태 <편식해도 괜찮아>, <멀쩡한 이유정>,<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봤고 이번에 <일수의 탄생>을 드디어 읽었다.

유은실 작가 정말 너무하시네. 어떻게 쓰는 작품마다 모두 다른 개성으로 다 잘 쓰시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다 한두 작품을 잘 쓰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10년, 20년이 넘도록 꾸준히 수준 높은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걸 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유은실 작가다. 책날개의 작가 이력을 살펴보는데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책을 엄청 적게 읽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어린이 이야기를 써서 동화 작가가 되었다.”...

오! 2005년에 출간된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 첫 작품이었구나. 그게 첫 작품이라니. 그렇게 잘 쓴 작품이 첫 작품이라니 엉엉. 부럽고 존경스러워 서두가 길어졌다.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해 봐야지.

뛰어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아이 백일수. 교실에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백일수.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지도 잘 말하지 못하는 백일수. 하지만 이현 작가의 <동화 쓰는 법>에서 읽었더랬지. 어리바리하고 좀 느리고, 목소리가 작고 우물쭈물한다고 해서 절대로 욕망이 없는 캐릭터로 보면 안 된다고.

“학교 가면 뭐가 좋을 것 같니?”
“어......모르겠어요.”
“입학 기념으로 짜장면 시켜 줄까?”
“......모르겠는데요.”
“왜 자꾸 모르겠다고만 하는 거야.”
“왜냐하면......모르겠으니까요.”

호불호가 분명한 아이도 있지만, 분명히 이렇게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아이도 있다. 뭐 그게 아이 뿐인가? 어른들도 그렇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삶의 목표가 뭐예요?” “뭘 가장 하고 싶으세요?” 어른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잘 모르겠는데요.” 대답하는 어른이 대다수일거다.

혼자 속상한 내적갈등 말고는 아무런 외적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던 백일수 어린이는 무럭무럭 무탈하게 자라 청년일수가 된다. 청년일수도 계속 그렇게 살 것 같은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즐거이 한 사람 몫을 해 낸다. 모험도 뚜렷한 인물간 갈등도 없는데 굉장히 통쾌하고 쾌감이 느껴지는 때가 온다는 뜻이다. (아직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는 자체 생략한다.)

인생은 너무나도 길어서 승패를 가리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나는 어릴 때 선생님이 묻는 모든 답을 알고 있어도 부끄러워서 절대로 손을 들지 않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면 기쁜 마음으로 발표를 했지만, 목소리는 개미 목소리였다. 그런 내가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리게 크고, 사람들 만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성격으로 변모할 줄은 나도 꿈에도 몰랐다. 일부러 노력한 것도 없었다. 저절로 그냥 이렇게 됐다. 우리는 모두 일수거나 예비 일수다. 쫄 것 없고, 걱정할 것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자신을 아껴주며 살자, 그러려면 남도 아껴주자.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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