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평화그림책 10
권정생 시,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TV를 전혀 보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자꾸 화면을 바라보게 돼서 시간 잡아먹는 무서운 존재라, 8년 전에 끊었다. 그 대신 늘 집에선 외출 준비하며, 방 닦으며, 빨래를 널며, 팟캐스트를 듣는다. 팟캐스트 어플을 켜고 ‘그림책’ 이라고 검색을 했다. 수백개의 에피소드가 검색이 되길래, 죽 살펴보다가 한 개를 꾹 눌러서 재생했다. <서천석의 아이와 나> 팟캐스트에 아동평론가 김지은 선생님이 나오셨다. ‘2015년 올해의 그림책’ 편이었다.

‘오! 글 잘 쓰시기로 유명한 김지은 선생님이 고르신 2015년의 그림책은 뭘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서천석 박사님도 10권, 김지은 선생님도 10권 선정하셨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메모장을 켜서 그림책 목록을 받아 적...었다. 내가 아는 작품이 나오면 반가워서 히죽히죽했고, 몰랐던 작품이 있으면 다급하게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책은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시에 김환영 화백이 그림을 그려 만든 책이다. <강냉이>. 투박하게 붓 자국이 남은 표지. 그림물감이 말라서 굳어진 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아이가 형이랑 엄마랑 강낭콩 한 알, 두 알 심는다. 잘 크라고 거름도 주고, 오줌도 날마다 거기다 눴다. 한참 잘 크는데, 전쟁이 터졌다. 피난길을 떠나야 한다.

아무것도 모른채 한 장, 두 장 넘기는데 손이 바르르 떨리고 눈 앞이 흐려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건 이야기 그림책이 아니다. 시그림책이다. 시 한 줄에 그림 한 장, 시 한 줄에 그림 한 장.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 그저 심어둔 강낭콩이 얼마나 컸는지가 궁금한 아이의 눈에 그려진 전쟁이 우리를 더불어 울게 한다.

왜 그 팟캐스트에서 김지은 아동평론가가 ‘2015년 올해의 그림책’ 중에서 이 책을 으뜸으로 꼽았는지 알 수 있었다. “말이 필요없죠. 무조건 사셔야 합니다.” 라고 짧게 말씀하셨던 책. 이 책을 상수에 있는 그림책 카페 <노란우산>에서 사서 읽은 뒤, 그 자리에 함께 아동문학 책 모임하는 친구 효진이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다. 조용하게 책장을 한 장씩 넘기더니만 덩달아 눈가가 젖었다.

삶 자체가 작품이었고, 작품이 삶이었던 권정생 선생님. 어린 권정생 선생님이 눈에 그려진 전쟁이 이런 모습이었고 그게 <강냉이>라는 시로 남았다. 그 시를 마치 눈 앞에 그려지듯이 있는 그대로의 색으로 가득차게 담아준 김환영 선생님의 그림에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한 장 한 장이 너무 벅차서 어쩔 수가 없다. 오랜만에 힘주어 말씀드린다. 빌려보지 말고 꼭 사서, 평생 소중히 간직하시기를. 자주 꺼내 읽고, 말문을 잃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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