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 김남희, 2006
(2015.8.25.~8.26.)
한때, ‘한비야’로 대표되는 여행서 종류를 탐독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나도 언젠가는 ‘한비야’처럼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힘든 여정을 꿈꾸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여행은커녕 세계의 유명한 도시도 가보지 못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의 뉴욕, 한여름의 밴쿠버, 쓸쓸한 바람이 불어오는 런던, 해질녘의 베네치아 같은 곳들. 이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도, 김남희의 여행기도 몰랐다. 다만 한비야의 박진감 넘치고 스펙터클한 입담에 매료되었을 뿐이다. 한비야 책에 대한 진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왈가왈부 하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 김남희의 글을 읽었다면, 지금과 달리 ‘재미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남희의 글에는 환상 속의 여행이 아닌, 어쩌면 2015년의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고단함, 일상의 귀찮음, 자신에 대한 불안, 여행의 지겨움에 대한 것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혼자여서 외롭지만, 함께여서 불편한 현실을 알게 된 서른 살 중반 여자의 글
지난 번 <엄마는 산티아고>를 읽고 난 후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집 근처 도서관을 배회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어차피 한 번 발 들인 거니 다른 종류의 책도 이어서 읽어보자’ 싶어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고단함 보다는 그래도 아직은 나아갈 곳이 있는 스무 살 중반의 남자와 연락하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고 참아내는, 불타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서로에 대한 책임이 남아 있는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서른 살 중반의 여자의 글은 확연히 달랐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에 몸서리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여서 불편한 모습, 사람들이 내는 소음에서 받는 스트레스, 코 고는 소리에 밤새 잠을 설치는 모습이 꼭 나 같기도 했다.
내가 꿈꾸는 진정한 삶이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우리 삶은 그리 아름답지도, 신나지도 않다. 겉으로 보기에도 괜찮아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보는 내 삶’이 아닐까. 거짓으로 번지르르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내가 만족하고, 내게 진실한 삶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의 저자도 산티아고를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십자인대가 좋지 않아 발을 질질 끌면서도, 택시에 무거운 짐을 실어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잡지 않는다. 짐을 보내고 가벼운 몸으로 한 구간 정도 걸어도 되겠건만 무슨 고집인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렇게 약속했다면,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 이 길을 걷겠노라’ 다짐했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이는 여행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면서 일어날 무수히 많은 경우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나는 책 속에 펼쳐진 완성된 세계가 두렵다
내가 책을 좋아하면서도 섣불리 책을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한 권의 책이라도 그 속에 완성된 세계가 있어서이다. 그 세계 속에 뛰어든 후 받을 영향과 그 세계 속에서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버거워서이다. 특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힘들 때면 더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여행에 대한 생각, 종교에 대한 생각, 삶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쩌면 나 역시, 어느 날 산티아고를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p.36
이십 년이 흐른 후 당신은 이룬 일들보다 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더 깊이 좌절하리라. 그러니 밧줄을 던져라. 안전한 항구로부터 배를 출항시켜라. 돛에 무역풍을 달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p.83 카를로스는 내게 말한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인 데다가 너무나 짧아. 그러니 시간을, 젊음을 낭비하지 마. 네 마음을 끄는 무엇이 어딘가에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곳으로 달려가. 설혹 그 무엇인가를 네 것으로 하지 못한다 해도, 네가 잃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야."
p.221 아니, 한번 가버린 것은 이미 사라진 것이다. 그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도, 청춘도, 맹세도, 가버리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지금 내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내 곁을 스치는 사람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 생생한 감정도 지나가면 그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p.223 전에 난 사랑 없이 부부라는 틀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비겁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뜨거움이 사라진 공간을 책임감과 약속, 의리와 믿음 같은 것들이 채워낸다면, 그게 더 용기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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