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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혁명, 진보, 평등, 자유 .. 꿀이 뚝뚝 떨어지는 섹시하고도 달콤한 단어들. 언제부턴가 이 꿀단지의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군의 <식자>들이 나타난다. 자칭 진보주의자 .. 이들은 <우리만 진보>라는 완장을 찬 후 곧바로 다른 이들의 이마에 <너희는 보수> 라는 인두를 지지기 시작한다. 

웅장하고 거룩하며 도덕적 순결로 멸균 처리된 안빈낙도의 유토피아..

그에 반하는 일군의 <변태들> .. 

특히 <탐욕과 사리사욕에 눈먼> "상것"들.. 

즉 상공인들이다. <안빈낙도>에도 돈이 필요할터.. 이 "상것"들의 돈을 착취하기 위해선 그들보다 자신들이 뭔가 더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 자신이 상대보다 무능력할때, 특히나 그들로부터 돈까지 뺏어와야 할 떄 .. 바로 그때가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를 대중들에게 설파하고 그들의 무의식에 각인해야 할 때이다. 즉, 그들의 이마에 활활 타오르는 "준엄한 꾸짖음"의 인두를 꾹~ 눌러 찍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모럴테러의 재미에 밤새는 줄 모르던 어느날, 이들의 불장난 한복판으로 갑자기 경고장이 날아든다. 그것도 지짐을 당하던 <악인>들이 아닌 한때 같은 <짝패>로 간주하고 안심했던 <선인>들로 부터 .. 

이 책은 그 경고장의 가장 우아하고도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천천히 차분히 논리적이며 분석적으로 조용히 그러나 당차게 경고하고 있다. 경고장의 테제는,

 <너희는 진보가 아닌 퇴보. 그 퇴보의 기원은 저 멀리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한 얼치기 진보들의 반응은 (이제껏 보아왔듯) 아래와 같이 두가지 일것이다.

<너는 우리를 음해하고 있어. 우린 그들과 아무 상관 없어>  

<그래 그렇다. 어쩔래?>

또한 이 넘사벽 저자를 친일파나 뉴라이트로 인두질 할 욕망이 저 밑에서 꿈틀거린다. 

그들의 반응이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주목할 것은 조선양반 이데올로기와 한국진보 이데올로기간의 유사성에 본인들도 화들짝 놀란다는 것이고, 그 놀람의 수위와 비례하여 강한 부정 혹은 강한 긍정의 수위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양반과 한국진보파들의 이데올로기적 유사성을 강하게 반증한다. 

그럼 이들의 대척점에 있는 참진보는 어떤 모습일까?  멀리 돌아갈 것 없다. 스마트폰부터 전기차, 화성탐사까지.. 지금 여기 우리가 향유하고 우리를 들뜨게 하는 대부분의 과학기술적 아름다움의 베이스캠프인 실리콘밸리의 <진보>, 그들의 <혁명>을 생각해 보면 된다.  컴퓨터/인터넷의 기원임과 동시에 수많은 벤쳐기업과 문화기업의 빅뱅을 만들어 낸 곳.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진보주의와 자유주의가 있다. 즉, <진보>의 정신이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도약을 가능하게 했고 지금은 저 우주 공간까지 그 <진보의 정신>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 적대적이었던 <보수적> 산업들 조차 지금은 이들이 낸 세금으로 연명하며 <진보>에 감사하고 있다. 이들의 실력과 능력이 곧바로 정의와 모럴의 기준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돌팔이, 아니 사이비진보는? 

사농공상 도덕순서도에 기반한 <식자> 무위도식의 유토피아, 세상 모든 참과 정의가 본인들의 전매특허인 양 거리와 사람들 사이를 들쑤시며 선과악으로 편가르기 하는 원시 종교의 바바릭한 재현. <탐욕에 눈이 먼> 상공인 상것들을 탄식하며 안빈낙도의 찬란함을 설파하는 백수시인 .. 바로 조선판 백수건달인 양반들의 고스트가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궂이 비유하자면 도덕설교와 이단처형으로 권력을 틀어쥐었던 중세기독유럽, 혹은 현대 이슬람국가의 정교일체를 떠올리면 될 듯하다. 물론 소련과 중국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또한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여하간 이 모든 시스템의 핵심권력이 바로 <도덕을 설교하고 강제하는 "양반"들> 이며 바로 이 점에서 북한은 가장 래디칼한 형태로 <신양반사회>를 구축하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한국진보에는 진보가 아닌 전혀 다른 독특한 작명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릴듯 하지만 뭔가 유사종교를 상기시키는 어떤 작명이 필요하다 싶은데.. 근데 이건 다른 주제니까 열외.  

무엇보다 한국의 정치지형도를 문화인류학적으로 섬세하게 분석하는 이 놀라운 지적 모험에 다시한번 경탄과 경외를 보낸다! 진보니 보수니 좌파니 우파니 허례허식을 떠나 독자가 누구든 근현대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 지형도 및 그 정신적-문화적 뿌리에 대한 삼인칭 관찰자 시점의 글로벌한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첨언하면, 본인 인생 한켠의 휑하니 펼쳐진 황무지를 자꾸 <진보>와 연관시켜 미화하려는 <도덕군자>들에게 쓰디쓴 반성의 약이 되리라고도 확신한다. 또한 정치 찌라시풍 도덕책 쓰기에 맛들린 <진보양반>네들은 저자의 학문적 성실성과 완벽주의를 조금이나마 배우는 자세로 독서하기 바란다. 그러면 "준엄한 꾸짖음" 이라는 히스테리성 강박으로 꽉찬 유사성리학 책쓰기의 허접함을 접으리라 ... 희망해 본다. 물론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이리 오너라~" 멘탈리티 또한 만만치 않으나 이는 이 책의 주제와 비껴 있기에 이를 다룬 다른 저자/명저를 기대해 본다.  

에릭호퍼의 <맹신자들>, 그레고리 핸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등과 병행 독서하면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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