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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경계청년, 노오력의 배신이 능력주의에 기반한 개별주의적 반격으로서 공정에 대한 청년들의 요구로 분출되었지만 근본원인은 사회구조적 불안정성(급격한 사회변화와 구조적 제약)과 차별, 불평등에 있다. 공정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이라는 개별주의적 존재론이 사회구성원의 삶에 파고들어 나와 이해관계 없는 이들을 타자화, 적대화하고 연대를 파괴한다.
공정이란 화두는 담론적폐쇄로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를 방해하고 사람들을 감정적, 동원적으로 움직이게끔 한다. 한국사회에서 폐쇄담론은 쉽게 생성되고 증폭되면서 다양한 관점이 부정되고 있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 신화는 구조적 불평등, 차별, 행운 등의 요소들을 은폐하고 모든 것을 개인의 성취로 환원하고 있다. 능력주의는 허구이자 불평등의 고착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수단이다.
공정은 공공의 지원과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긴다. 그들은 차별이 해소되었다고 하지만 ‘이력서 실험’에서 보듯 차별은 엄현히 현존한다. 이런 현실에 대한 선택적 혹은 전략적 무지와 백래시가 결합해 공정과 능력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치켜 세운다. 그러나 능력이란 무엇인가? 능력의 정의는 다양한 사회적 조건(자본주의, 가부장제 등)에 기반해 때론 과대, 과소 평가되기도 한다. 획일화, 서열화된 능력이 아닌 다원화된 정의와 기준이 필요하다.
공정이 지배하는.. 그래서 무능력한 도태자가 되지 않으려 자신을 쥐어짜다가 찾아온 번아웃(탈진, 분리)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다. 돌봄(관계적 존재론)이 필요한 시대다. 나의 돌봄의 동심원이 확장되어 누구도 배제되지 않게끔 해야 한다.
우리의 경쟁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그 결과는 개인이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자유주의 경제이론은 재생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 기득권의 논리다. 그들은 공정경쟁과 능력을 앞세워 구조적 불평등을 감추려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선별적 보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모두가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정의로운 조직이 되기 위해선 분배정의, 절차정의, 관계정의, 정보정의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생명은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목숨의 가치가 동일하지 않다. 교차성 이론을 통해 진보 진영 내에서도 협소한 진영논리(계급, 젠더, 인종 등)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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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권을 계기로 공정과 혐오는 전염병처럼 청년세대에 스며들어 하나의 공고한 프레임이 되어버렸다. 연대는 커녕 최소한의 연민마저도 증발되어 가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희망과 낙관적 전망의 부재는 개인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다. 이것을 해결할 정치세력이 부재하니 문제를 인식한 우리 스스로 배제가 아닌 돌봄의 철학으로 변혁정의에 나서자는 저자의 말은 절박하게까지 느껴진다.
시대와 불화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 어려움을 연결을 통해 이겨내고 대안을 만들자는 주장이 가슴을 울리면서도 깊숙한 곳에서 조금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내가 이미 시대와의 불화를 접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