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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책을 고를때 버릇처럼 이 책이 내 아이가 읽어서 좋은 책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사두고 한참을 책장에서 장식처럼 서 있던 공지영의 도가니를 숨도 안 쉬고 읽어버렸다.
우리 암울한 현대사를 조금만 안다면 연상되는 뻔한 장치들이 읽는 내내 거슬렸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
작가가 일부러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한민국에서 21세기에 민주화 30돌을 맞는 오늘날에도
이 나라 곳곳에서 행해지는 가진자들 권력자들의 패악질을
그냥 있는 그대로만 고발해도
소설 이상으로 독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공지영은 이미 알고 있었을거다.
그래서 이 노련한 작가는 욕심 낼 수 있는 수사적 글쓰기를 포기했던거 같다.
아니라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의도였다면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하고 공감하고 있으니
성공적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공지영의 도가니를 6살 내 딸아이가 언제쯤 읽으면 좋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어디선가 있을지도 모르며 현재진행형이라는
현실이 읽는 내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그 실상이 너무도 끔찍해서 솔직히 내 아이는 몰랐으면 하는 본능적인 어미의 맘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른을 훌쩍 넘은 내가 읽어도 며칠을 허덕거리며 가슴이 찌르르한데
이 아이가 커서 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느낄 그 참담함을
미리 알려주어야 할지 그냥 최대한 늦춰서 알게해야 할지 답이 서질 않는다.
가끔씩 나누는 아이와의 성폭력 방지교육에 관한 이야기 때도
참 많이 서글퍼진다.
왜 모르는 사람들을 혹은 안면이 있는 이웃들까지 잠재적 범죄자도 인식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교육을 해야하는지 세상이 참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저저와의 대화는 소설을 읽고 난 후 보았다.
역시 내가 궁금해하던 그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화라기보단 강연에 가까운 이야기.
엽기적인 설화나 구전동화들이 다 감정이입을 통한 공감하는 연습을 시켜주기 위함이라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팔이 잘려나가는 햇님달님이야기는 각색하여 들려줄 수 있지만
버젖이 이 대낮같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행태들을
내 아이에게 담담하게 이야기 해 줄 용기가 아직 나질 않는다.
서유진이 했던 그 말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라는 그 말이
가슴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