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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이 '상' 받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본래의 모습보다 더 근사하게 그들을 포장해 주기 때문이다. 시중의 수많은 소설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노벨문학상보다 더 근사한 포장이 있을까(물론 너무 근사해서 오히려 거리감을 주기도 하지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했을 그 순간에도 역시 그 포장은 '여지없이' 날 유혹했으리라. 허나 만약 이 책이 그 포장을 벗기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면, 지금쯤 나는 노벨문학상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실랄하게 이 책에 대해서 갖은 험담을 늘어놓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까지 노벨문학상이라는 '대단한' 선입관에 눌려있지는 않았었다는 것이다.
'읽기 쉬운 작품은 가볍다?' 라는 편견은 아마 인간이 문화라는 말을 쓰는 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단 그것은 '읽음' 뿐만이 아닌 문화 전반에 걸쳐 뿌리깊게 박혀있는 편견이 아닐까. <파리대왕> 역시 '참' 읽기 쉬운 작품이었다. <설국>을 읽을 때 느꼈던 놀람(노벨상 탄 소설도 이렇게 읽기 쉬울 수 있구나, 하는)이후로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한 작품. 물론 그 작품들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찾아내기나 했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내가 문학도가 아닌 이상 내가 받았던 느낌과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이 작품은 좋았다. 무엇보다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무조건 숨긴 것도 아니지만, 인간의 본성을 파헤쳐 놓은 점. 흔히들 인간은 고등동물이네, 이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네 하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 부모의 살이라도 먹을 수 있는 동물이 인간 아니었던가. 인간은 그저 동물일 뿐이다. 우리 주위의 현란한 고철 덩어리들이 그것을 가려주고 있지만, 만약 그것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그래서 벌거벗은 인간들만 남게 된다면, 인간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야만?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을.
그래서 나는 내가 인간임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