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쾌락의 급소 찾기
이명석 지음 / 시지락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공시적인 관점을 가진 만화 가이드북이다. 이 문장에서 의미하는 공시적인 관점이란, '가장 고마운 키다리 아저씨는?'이나 '가장 사랑스러운 연애쟁이는?'과 같은, 우리가 만화를 즐기면서 한두 번씩 떠올렸을 법한 마흔다섯 가지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며 만화작품들을 묶어 내는 관점을 말한다.

이 책이 모두 221편의 작품들을 해부하기 위해 선정한 주제는 그다지 체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분히 만화적이다. 만화만큼 캐릭터와 아이템과 스타일이 중요한 창작예술분야도 달리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군가 창의적인 문학의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만화에서 그것은 너무나 상습적이고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런 식의 편집은 기존의 몇몇 가이드북들이 연대기의 구성으로 일부 고루한 성향의 작품들에 지면이 치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런 장치는 그 작품의 가치에도 아랑곳없이 비평의 대상으로는 소외되어 왔던 순정만화들과 매니아만화들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맡았다. 그동안 이명석의 활동영역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며 동시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부분에는 '행운과 불행의 그래프' 또는 '자웅동체의 연대기' 같은 도식을 그려넣은 흥미로운 보너스가 삽입되었다. 그런 도식의 비교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잠시 어린 시절이 유치하지만 정말 진지했던 편가르기와 보물찾기의 재미에 빠져든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길이가 길어지는 작품 리뷰들은, 한편으로는 아쉬움으로 작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서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라딘을 이용할 때 먼저 마이리스트나 관련도서 항목에 눈길이 가지만, 장바구니에 담기 직전에 정말로 유익한 것은 소개글과 리뷰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공감할 수 있다. 권말에는 찾아보기를 따로 추려놓아 한 작품 한 작품을 다시 체계적으로 정리해 볼 수도 있고, 어느 작품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가를 다시 헤아려 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쟝르와 취향의 비례에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다소 남성중심의 시각을 어쩔 도리 없이 노출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많은 면을 한꺼번에 고려한 편집의 배려로, 우리는 이 책을 들고 언제나 홍대앞 아니면 동대문의 만화전문서점을 찾아가 유형별로 취향별로 비교하며 만화를 고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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