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해법 - 블랙홀 서울, 땅과 건축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
김성홍 지음 / 현암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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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이질적이다'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생각보다 많이 풍성하다. 옴니버스 형식이라 읽다가 덮은 후, 뒷부분 어딘가에 이어 읽어도 잘 읽어져서 재미있다. 책 앞에 "도시와 건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건축설계가 시작된다"는 말, 책을 닫는 글에 "좋은 건축은 좋은 기획이 전제되어야 하고, 좋은 기획 앞에는 옳은 도시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건축가, 조경가, 도시계획 엔지니어 등 전문가가 읽어도 좋지만, 건축-도시-조경-도시행정-지리 등을 공부하는 학생과 "서울 또는 우리 도시"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까지 재밌어 할 듯 한데. 우리도시와 우리 자신의 삶에 직접 닿아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대같은 책 같다. 기본에 충실한 책이며, 독자의 자존감을 자라게 하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서, 이 책의 단편들이 자연스레 대화의 매채로서 작동하면 좋겠다. 비단 건축가만의 몫은 아니겠지만, 저자의 글 일부를 발췌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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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도시와 건축의 경계, 건설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도시의 외적 힘'을 학습하고 ... 실력을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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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해법 - 블랙홀 서울, 땅과 건축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
김성홍 지음 / 현암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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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재밌어요. 서울이라는 익숙한 도시의 수면 아래에 있던 이야기들이 알차고 재밌습니다. 가본적 없는 아주 먼 곳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사는 도시의 일상을 작은 이야기로 쪼개어 주셨네요. 우리 도시를 이렇게 ˝흥미롭게˝ 보는 방식을 알려준 저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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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건축 - 건설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
김성홍 지음 / 현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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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담는 논문식 글쓰기(Hybrid 에세이) : 길과 상업용 건축물에 관한 생각·글·그림들..
 
건축과에서 6년을 공부하고, 이제는 도시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 내게
'희망의 중간건축'을 꿈꿀 수 있게하는 선물같은 책
 
[김성홍, 길모퉁이 건축, 현암사]
 
같은 이가 썼던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도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이 글 역시 읽기쉬운 문체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내용들이 인상적이다.
 
1)
저자는 한국건축이 지금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널리 알려진 [건설신화의 붕괴, 경제적 양극화]라는 표피적 이슈보다 더 가까이서 체감되도록 설명한다.
표지의 시선을 끄는 좌상단에는 "건설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 이라는 표어가 적혀있다. 
그리고 제목 아래에 적혀있는 문구들을 읽어보면
"...경제양극화가 중산층을 붕괴시키듯 건축의 양극화는 도시의 중간지대를 질식시킨다... 중간지대가 없으면
도시의 중간문화도 시들해진다. 길모퉁이 중간건축이 살아나야 우리 도시의 문화가 다양하고 풍성해진다" 라고
다소 감상적으로 적혀있다. 책 구매 후 책표지를 넘기기 전 이었지만 건설신화, 아파트공화국 등의 큰 이야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책의 주요한 내용은 '길 + 상업건축 + 속도" 라는 3개의 시선을 축으로 이야기되고 있고,
길과 상업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하기 전달하기 위해 4개의 핵심어
Key word(수레, 자동차, 승강기, 온라인) 를 사용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묶어내고 있다.
 
책안의 곳곳에는 저자가 공부했었던 미국의 사례들이 경험자의 구체적인 시선으로 적혀있으며,
특히 p85 에서는 학생신분으로 약 20여년 전 체험했던 '노스트리트'의 거리문화향수를 본인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구체적 도면으로 설명하는 등의 증빙 방식은 도시건축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너무 당연하면서도... 배우고 따라야할 모범처럼 다가왔다.
 
0장 시작 : 길과 속도
1장 수레 : 길과 광장 / 시장과 상점가로 / 쇼윈도, 투명한 거리 / 아케이드와 백화점 / 길모퉁이 상점
2장 자동차 : 신작로와 고속도로 / 교외도시와 쇼핑몰 / 도심 몰 / <트루먼 쇼>, 허상의 도시 / 대형 할인점
3장 승강기 : 수직 고속도로 / 높은 건축의 낮은 곳 / 길에서 멀어진 상업공간
4장 온라인 : 연결망의 도시 / 온라인@오프라인 / 이방공간과 역지대 / 이면도로의 힘
5장 에필로그 : 저무는 건설한국의 신화 / 희망의 중간건축
부록 :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3)
책의 구성이 전작이었던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보다 쉽게 풀어쓰려고 한 흔적이 보이지만,
좋은 점도 있고 오히려 나쁜 점도 있다.
전작을 읽을 땐 둥근 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토론하는 듯한 느낌이지만,
[길모퉁이 건축]은 쉽게 풀어쓰는 느낌이라 저자로부터 직접 [강의]를 듣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개인적으로는 세미나에서 활발하게 토론하는 분위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인듯..)
저자 특유의 간결한 문체들과 구체적 통계자료 및 도면들에 의해 설득력이 강한 책인건 여전하지만,
읽는 사람들이 생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자유는 조금 줄어든 듯 하다.
 
 
4)
내가 기억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1개는 아래와 같다. (더 재밌는 장면들은 각자가 발견하기를 ^^)
p100 블록(단지 size)의 크기 비교 -> 도면을 보면 바로 충격받고, 바로 공감할 수 있다.
        서울은 강북이나 강남이나 거대한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남역 동북쪽 블록은 강남역을 기점으로 북쪽의 논현역까지는 750m, 동쪽의 역삼역까지는 850m에 이른다.
        뉴욕 록펠러센터 280m*70m / 일본 교토 톈수정 65m*125m / 파리 퐁피두센터 125m*170m
        서울 강남구 역삼동 850m*750m / 서울 종로구 회동 450m*800m / 서울 종로2가 380m*540m
 
5)
저자는 우리나라의 도시와 건축, 그리고 일상에 가까운 길과 상업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비록 서울이라는 대도시 중심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매번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이야기꺼리를 마련해주는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세계도시에서 우리의 도시를 향한 시선으로 작성된 두 권의 책은 잘 읽었고,
이제는 지방도시들을 포함해서 주변 이야기들이 담긴 책도 같은 시선으로 풀어내주기를 기대해보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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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건축 - 건설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
김성홍 지음 / 현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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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건축을 구매!! 김성홍의 전작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을 읽었고, 쉽고 간결한 문체로 우리도시에 대해 탄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감탄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길과 건축'을 주제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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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오래된 삶 > 즐거운 병의 향연
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5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존 테니엘 그림, 최인자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오래 기다렸던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단순한 동화가 아님에도 아이들이나 읽는 동화처럼 취급되어 제대로 된 번역이 이뤄지지 않았던, 판타지의 고전의 반열에서 급기야 동시대의 철학적 텍스트가 된 작품을 마주하는 즐거움은 그 기다림에 대한 반가움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원작의 두 배는 될 듯한, 원작만큼이나 풍부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주석까지 상세하게 덧붙여져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석자인 마틴 가드너는 앨리스의 원작 삽화가였던 존 테니얼의 알려지지 않은 삽화까지 찾아 수록해 놓았다. '결정판'이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간 확인할 수 없던, {앨리스}에 숨겨져 있는 수학적 상징을 비교적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왜 이 책이 디지털 시대라 불리는 이 시대에 '다시' 각광(이 책의 친절한 각주들을 보면 {앨리스}가 당대의 작가들의 작품에도 수없이 인용되고 있으며, 그들 작품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아일랜드의 고집쟁이 제임스 조이스마저 어렵기 그지없는 책, {피네건의 경야}에 {앨리스}를 인용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책 49쪽 참조)을 받고 있는지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즐거운 병의 향연'이라 할만한 루이스 캐럴의 아름다운 욕망 또한.......

{앨리스}는 디지털 공간의 '혼융' 혹은 '변화'의 속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다. 접속 코드와 같은 구멍, 무한한 변화를 '몸'으로 보여주는 주인공 앨리스, 그리고 실재와 비실재, 현실과 비현실이 혼융되어 있는 공간 혹은 공간성. 너무 간단한 언급이지만, 이러한 속성 혹은 미덕 때문에 {앨리스}는 우리 시대의 작가들에게 열렬한 조명을 받고 있다.

촬영 기법이나 내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SF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매트릭스'를 보면 우리는 이 점, 즉 {앨리스}가 어떤 방식으로 인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떻게 동시대의 텍스트가 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네오는 검은 모니터(구멍)를 통해 전해온 한 문장, 곧 "흰토끼를 따라가라"는 문장을 통해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세계의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닌 허상일 뿐이라는 진리를 터득하는 계기가 된 것이 '구멍'과 '토끼'였던 것이다. 이는 앨리스가 비실재(판타지)의 경험을 통해 실재의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과 정확한 대칭을 이룬 채 일치한다.
같은 시퀀스에서 천재적인 형제 감독(래리&앤디 워쇼스키)은 {앨리스}가 지닌 이러한 현재성을 매우 적절한 비유 혹은 상징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인용으로 나타난다. 다름 아닌 {시뮬라시옹}과의 병치. 문을 두드리는 흰토끼 일행에게 줄 CD를 네오는 현대의 고전이자 디지털적 세계에 대한, 또는 그러한 세계로의 변화에 대한 영향력 있는 저작인 시뮬라시옹(장 보드리야르)의 '구멍(책 속은 검은 사각의 구멍으로 보여진다)' 속에서 꺼낸다. 이는 {앨리스}가 단순한 캐릭터나 사건의 인용이 아닌 '매트릭스'라는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 혹은 세계관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앨리스}는 과거의 어떤 책이 아니라 현재 이곳의 책으로 문화 속에 그려지고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작가 중 한 사람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려 보라. 조그마한 터널(검은 구멍)을 통해 비실재적 공간으로 들어가 '성장'을 하고 돌아오는 소녀의 이야기 말이다.
여담이지만, 이 책의 108쪽을 보면 같은 감독의 또 다른 걸작 '이웃의 토토로'의 명장면인 나무 위의 고양이버스와 너무도 유사한 삽화가 인쇄되어 있다. 하야오 역시 {앨리스}의 전체적인 세계와 함께 그 속의 디테일까지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우리의 작은 소녀 '메이'는 토끼처럼 희고 귀가 큰 작은 토토로를 따라 나무들로 이루어진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 나무 '구멍' 속에서 자고 있는 커다란 토토로를 발견한다).

어쨌든, 그러니, 이 '커다란' 현재의 고전을 읽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더구나 이 책, {앨리스}는 한 위대한 환자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태어난 작품이 아니던가? 그러니.......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출판된 이후, 비록 그렇게 불리고 있긴 있지만, 소녀 페티시즘은 '롤리타 콤플렉스'라기보다는 '앨리스 콤플렉스'로 불려져야 한다. 하지만 이름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페티시즘은 일종의 성적 전도 혹은 욕망의 전도다. 평범하지 않고, 일상적이지 않고, 일반적이지 않은, 그리하여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사유 속에서는 '변태'라는 이름으로 도외시되고 있는 전도. 하지만, 예술은 혹은 예술 행위는 결국 표현의 욕망과 표현된 것이 만나는 페티시즘의 장이 아니던가? 세계를 세계 자체로 표현할 수 있는 자,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보드리야르의 표현({사물의 체계})에 따르자면, 현대는 명명의 체계가 불가능할 만큼 급변하는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니 어찌 총체성, 주체의 완전한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페티시즘은 어쩌면, 가장 솔직한 욕망의 표현, 또는 표현의 욕망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캐럴은 소녀 '앨리스'에 대한 성취할 수 없는 욕망을 이 책 {앨리스}를 통해 성취(? 캐럴에겐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말 그대로 성취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한다. 도무지 성취될 수 없는 그 욕망, 곧 사랑을 말이다.


어째서 그가 전도된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그러한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우리는 그저 그의 전도가 작품을 통해 재전도를 이뤄 예술로 승화되는 '카니발' 혹은 향연을 즐기면 그만일 뿐이다. 세계의 부조리와 그것을 통한 성숙을 어른이 아닌 친구의 마음으로 연인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기원하고 있는 한 중년 사내의 소녀에 대한 정성어린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면 그만일 뿐인 것이다. 병이라고 치부되고 있는 그 전도를 즐거운 병으로 만든 한  아름다운 환자의 향연에 행복한 마음으로 빠져들면 그 뿐인 것이다.
그러니 '롤리타 콤플렉스'건 '앨리스 콤플렉스'건 이름이 무어 중요할까.

오래 기다렸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읽었지만, 아직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오래 오래 두고 두고 몇 번이고 읽어가며 환상과 사랑의 병에 빠져들고 싶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양소유({구운몽})가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듯 즉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듯 우리의 현실을 더욱 치열하게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려나 이 즐거움을 이 병의 즐거움, 즐거움의 병의 향연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아직도 예술적 환상이 우리의 삶과 사랑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책 속(pp.197-198)에서

그러므로 어서 와서 들으렴.
 가혹한 세월에 시달린 두려움의 목소리가
그대를 반갑지 않은 침상으로 부르기 전에.
 우울한 아가씨여!
우리는 단지 임종의 시간이 가까운 것을 알고 초조해하는
좀더 나이 든 어린아이들일 뿐.

집 밖에는 눈앞을 가리는 눈과 서리. 
 폭풍의 우울한 광기 -
집 안에는 벽난로 불빛의 빨간 열기와
 어린 시절 보금자리의 즐거움.
마법의 말들이 순식간에 그대를 사로잡으리.
그대는 미쳐 날뛰는 돌풍을 알아채지 못하리라.

비록 이야기 속에서
 한숨의 그림자가 가냘프게 떨릴지 모르지만.
‘행복한 여름날’은 지나갔기에,
 여름날의 영광은 사라졌기에 -
하지만 고통의 한숨도
우리 이야기의 즐거움을 시들게 하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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