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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은자들
이나미 리츠코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현대인의 삶은 도대체가 바쁘다. 삶의 궤적이 늘어 난 만큼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거나 만족도가 높아 졌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근기(根機)와 하고자 하는 욕망과 성품의 차이가 다르기 때문에 보편 타당성으로 인정된 것만이 진리로 추앙 받고 있다. 진리란 세월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자기 편향적 이입법을 사용한다면 그 또한 편리한 삶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불변의 진리가 있고 가변의 진리가 있는데 이를 불가(佛家)에서는 방편(方便)이라고 하며 공자는 유위(有爲), 장자는 무위(無爲)라고 하였다. 아마도 이런 의미를 여기서는 은자라고 표현한 듯 싶다.

따라서 은자의 삶이란 모든 것을 초월하였다는 의미이다. 즉 진리와 모순, 순종과 거역, 절제와 욕망등 모든 것을 초월한 제 3의 공간에서 유유자적하는 인생을 말한다. 사서(史書)에는이른바 은자가 무수히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이 외부환경과 사서로 드러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은자에 대한 적당히 알 수 있는 노트가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싶다. 멀게는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3황제로부터 가깝게는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에서 그나마 인구에 회자(膾刺)되는 인사들을 다이제스트 하여 현대인에 맞게 정리한 책이 바로 '중국의 은자들' 이다.

여기서 말하는 은자의 탄생은 인간의 극한 상황과 도덕 삶의 기준이 벗어나는 시기에 맞추어 이들은 세속과 절연을 하는데 이 과정이 잘 표현하였다. 물론 의외의 경우도 있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동방삭(東方朔) 은 정치적 줄타기 속에 적절한 처세술로 한 세상을 소리 없이 살다 갔다. 그러나 인위적 삶에 대한 거부 및 자연과 예술에 대한 자기 표현방식으로 대부분의 은자들은 세속과 융화를 단절한 것이다. 죽림칠현 백이와 숙제 이백과 도연명등 우리 귀에 익은 인사 외에도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방대한 고전을 뒤져 나름대로 은자의 기준을 찾았고 여기에 맞는 이야기 소재를 발굴하였다. 이는 우리가 어느 책에서 발견하지 못한 내용을 보다 사실적으로 기술하였다는 점이다. 한가지 궁금한 점은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오제본기(五帝本紀)의 내용 중 오제를 표현할 때 이 책에선 성천자(聖天子)라고 썼는데, 이는 일본어에 등장하는 극 존칭의 의미로 사용된 것을 번역 과정에서 축자(逐字)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뭏튼 세상은 갈수록 우리에게 경박단소(輕薄短小)함만을 추구하도록 유도한다. 다행히 나는 이책을 보고 책장을 뒤져 도연명과 이백의 책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가볍게 보고 자신의 깊이를 다시 측정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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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
이옥순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국내에 인도가 하나의 여행지 또는 우리의 이웃나라로서 소개 된 것은 불과 20 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내사 알기로 한국동란이후 반공포로중 인도로 떠난 한국사람이 인적 교류의 시초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체육교류와 학술교류를 제외하곤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학(indology)의 깊이가 일천하다는 것을 말한다

일본의 경우 불교학(buddhology)에서 시작되어 인도류(印度類)로 발전하면서 학문적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초기 인도학의 국내소개자들도 일본에서 수입한 인도 알기에 불과하지 않았다. 국내 불교 성직자들의 성지순례가 유행처럼 번질 무렵, 국내에서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인도 알기가 시작되었고, 항공교류와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상업적 인도 알기에 개관적 판단 기회를 상실한 인도여행객의 숨통은 그나마 단편적인 여행기가 전부였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런 류의 안내서는 영국적 직관하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정화작업을 거치지 않았거나 적어도 인도 바로 알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마디로 말한다

. 식민지 정치가, 사상가, 철학가에 의한 개조 작업을 거친 인도라는 것이다. 영국인의 오만함과 영리함을 나열한 인도 왜곡작업이 결국 오늘의 인도 전부가 되었다, 라고 작가는 쓰고 있다. 또한 이를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인 기존의 인도소개자들은 엄청난 우(愚)를 범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오천년 역사 속에 그들은 갠지스 문명과 모헨조다로 문명의 주인공이었으며, 세계 4대 성인의 한 부분인 석가가 출현하였다. 정복자의 통치적 개념이 도입된 계급문화와 절망적인 자연환경은 보다 초인적 힘을 유도하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작가의 표현대로 박제된 오리엔탈리즘만이 우리가 아는 인도의 현실이라면 과연 그 이전 인도에 대한 언급이 수반 되어야함에도 어느 면에서나 단 한 줄도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타인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면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를 정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이 없다. 이는 작가로서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며 예의다 용감하다 못해 독선적일 만큼 그 동안의 노력을 단 한칼로 정리해버리는 지적(知的)용감성이 나는 두렵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인용구와 참고 해설을 도입하였기에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라고 되어있다' 또는 '라고 말한다'로 쓰여 있다. 그 아래 작가의 소견이 나열 대지만 이는 평범한 인도알기 동참자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적어도 인도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교차점에 대한 자기 기준이 먼저 수반 되야 한다. 나는 인도 여행을 하기전 인도학에 대한 개념을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또 인도를 40여 차례 여행도 했다. 델리, 뭄바이, 캘커타 등 어느 곳에서 여행을 시작하든 내가 본 인도는 달랐다. 그곳에는 저자의 표현대로 영어 잘하고, 영국식 잔재가 남은 사회 현상은 원래의 인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오천년 동안 그래 왔듯이 인도는 변한 것이 없다. 만약 작가의 말대로 우리가 보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카르마의 무게를 그대는 아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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