썅년의 미학 썅년의 미학
민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저자: 민서영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책이 간행되기 전부터 SNS에서 내용이 '사이다'라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들'이었다는 추천을 많이 보았다.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가 신청한 이유였다.


 썅년의 미학.

제목부터가 엄청나게 강렬하다. 욕으로 쓰이는 말이 당당하게 제목이 되어 책 전면에 인쇄되어 있는 것부터가 이 책이 어떤 얘기를 늘어놓을지 감히 짐작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제목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 번째로 마음에 든 부분을 꼽아보자면, 단연 표지였다. 페미니즘 도서로 분류되는 책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홍색 일색인 것들이 나는 꽤 불편했다. 분홍색을 여자의 색으로 정의한 사회가 이상한 건 분명하지만,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더욱더 접근을 꺼리게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남자는 그저 '여자의 색'인 분홍색이라 무작정 싫어하고, 일부 여자 역시 '여자의 색'이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여자의 색'이라고 폄하 당하기 때문에 분홍색을 좋아할 수도 있는 취향이 미리 거세당한 느낌이 있다. 스스로 분홍색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나 역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의미의 연장선으로 분홍색 일색이지 않은 표지가 좋았다. 그리고 컬러에 대한 감상을 떠나, 후작업 된 홀로그램박이 너무 예쁘고 가름끈이 있는 양장본이라는 점이 더없이 나의 취향에 맞아 좋았다.


 표지에 한없이 감탄한 후 드디어 표지를 열었다. 서밤님의 서평에 속으로만 좋아요 백만 개를 보내며 목차로 넘어갔을 때, 나는 설레는 동시에 울컥하는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그저 목차만 보아도, 내가 하고 싶었던, 앞으로도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여자로 태어나서. 내가 살아온 일수보다 더 많이 생각했던 그 말. 제목들을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님이, '그동안 너도 살기 힘들었지?'라고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다.


 잠시 딴 얘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다. 글자를 하나하나 매우 꼼꼼하게 읽는 편이기 때문이다. 만화책 한 권을 읽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런 내가 이 책을 1시간만에 읽었다. 재미있고, 통쾌하고, 시원했다. 명치에, 머리에, 온 전신에 평생 얹혀있던 하고 싶은 말을 못해 쌓인 울분이 쑥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이 책이 그렇게 많은 추천을 받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예의와 호의를 헷갈리지 마세요.  

- p. 20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문장이었다. 여자에게 늘 싹싹하고 상냥하게 말하라고 가르치고 강요하면서, 왜 그렇게 언행을 하면 다들 날 좋아한다고 착각하느냔 말이다. 난 이런 걸 두고 늘 속으로 '지가 그렇게 행동하라고 했으면서 이제와서 X랄이야.'라고 생각했었다. 사람의 면전을 앞에 두고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이제 나는 이 문장을 통해 면전에서도 당당하게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얻었다. 


 사실 좋았던 내용을 꼽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은 깊은 공감을 주었다. 하나하나 모두 언급하기엔 무리가 있어 한 문장만 인용해 보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이 책을 모두가 읽어보길 바란다. 단순히 '사이다' 내용이라서 추천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다. 물론 그런 내용이기 때문에 나처럼 하고 싶은 말 못하고 냉가슴 앓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이점도 분명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책은 비슷한 억압을 받으며 살아온 여성들과, 그런 여성들을 늘 '여자는 속을 알 수 없다.'며 비하하는 남성들, 모두가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나라 인구의 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얼마 전 페미니즘 드라마라며 후려치기 당하기도 했던 한 드라마가 지하철 쩍벌남에게 대처하는 여주의 모습을 방송했을 때, SNS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었다. 저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이며 현실에서는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르니 여자들이 절대 저렇게 행동할 수 없다고. 사이다만 보여주면 다냐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걸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먼저 너의 행동과 말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라는 걸 알리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그저 '사이다'면 또 어때? 속 시원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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