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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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금희

출판사: 창비



 매일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읽고 또 읽느라 책이 이미 너덜너덜해져 인증샷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은 재미있는 책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에 이어 두 번째로 읽어보는 김금희 작가의 글은, 극중 인물이 살아온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는 것이 너무나 나의 취향이었다. 그래서일까. 상수의 시점에서는 내가 상수가 된 것처럼, 경애의 시점에서는 내가 경애가 된 것처럼 그들의 인생 굴곡에 울지 않는 그들을 대신해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련과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따뜻한 마음의 위로를 한아름 받은 것 같았다. 책을 덮자마자 생각했다. 참 다정한 책이었다- 고.



 상수와 경애의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는 회사의 눈엣가시들이다. 상수는 낙하산이다. 사장의 아버지와 상수의 아버지의 친분으로, 영업 실적이 좋지 않음에도 회사에 오래 남아 있고 팀장대리라는 선뜻 무엇인지 이해가지 않는 직책을 맡고 있다. 경애는 노조 파업의 참가자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제출한 사표를 돌려받지 못했음에도 운좋게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지 않고 남게 된 주임이다. 

 두번째는 오래 전 화재 사고로 잃은 친구 은총이다. 경애와 은총은 영화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다. 각각 피조와 E라는 닉네임으로 만난 그들은 이야기를 하고 함께 영화를 보며 한겹한겹 감정을 쌓아간다.



사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어, E에게.

자자고?

자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뭐라 그랬어?

그러면 아주 따뜻하겠네, 라고 했어. 얼마나 따뜻할까, 하고. 한동안 따뜻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었어, 기억이 나서. 어떤 말은 그렇게 기억에 빼앗기는 것 같았어, 쓸 수 없었어. 

- p. 157



은총에 대한 경애의 마음이 앞에서 보여줬던 것보다 깊었다는 것을 여기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친구를 잃었을 때. 같은 현장에 있었음에도 본인만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을 때. 미성년자가 음주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추모가 아닌 욕을 먹어야 했을 때. 경애의 마음은 어땠을까.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상실감, 고독감,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했다. 상수와 은총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화제작 캠프에서 만난 사이다. 짝사랑 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친한 사이. 은총이 죽고 상수는 그의 사서함에 남겨진 메시지들을 들으며 운다.



그리고 여자애가 내는 숨소리만이 들리더니 끊을 때쯤 되어서야 미안해, 하고 겨우 한마디를 내놓았다. 미안해, 나는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그래서 눈을 먼저 네가 있는 곳에 보낼게.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달그닥 소리가 나며 녹음이 종료되었는데 상수는 긴 침묵 끝에 여자애가 내놓은 그 말이 지금까지의 누구의 애도보다 슬퍼 오래도록 울었다. 

- p. 109



30대면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그의 삶에 죽음으로 인한 상대의 부재가 많다는 것이, 경애의 마음뿐 아니라 상수의 마음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두 사람은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딘다. 사랑하던 친구의 부재를 견디고, 압박하는 회사를 견디고, 폭력적인 가족을 견디고, 사랑의 상처를 견디고, 엄마의 부재를 견디고... 인생을 견뎌내는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끊임없이 이 모든 것을 견뎌내고 살아가려 한다.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상수의 페이스북 페이지 이름처럼, 그들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간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내려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감정선을 가만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켠에 큰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경애와 상수에게,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 시대의 모든 '견디는 인생들'에게 敬愛를 표하고 싶어진다.



어떤 말은 그렇게 기억에 빼앗기는 것 같았어, 쓸 수 없었어.

그리고 여자애가 내는 숨소리만이 들리더니 끊을 때쯤 되어서야 미안해, 하고 겨우 한마디를 내놓았다. 미안해, 나는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그래서 눈을 먼저 네가 있는 곳에 보낼게.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달그닥 소리가 나며 녹음이 종료되었는데 상수는 긴 침묵 끝에 여자애가 내놓은 그 말이 지금까지의 누구의 애도보다 슬퍼 오래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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