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여 날자 날아보자꾸나

먼저 읽은 전문가가 권하는 청소년 책 18권 

 


 
나의 그녀, 그들의 그 사람
요즘 아이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 미성숙한 어른의 적나라한 묘사가 돋보이네
 

 
청소년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미래에 이르기까지 어두운 발치를 밝혀줄 불빛 한 점이 간절하다. 그것을 멘토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나의 그녀>에서 주인공 김준희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그녀’는 결국 과외선생 이희진이 아니라 그의 불안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멘토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 하나는 ‘요즘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관찰과 이해다. 그들만의 문화,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세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 작가는 ‘아이들’을 향한 ‘낡은 눈’을 거두고더 낮고 치밀하게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한다.

또 하나의 미덕은 허영에 가득 찬 어머니, 무능력한 아버지, 기도로 현실을 도피하려는 할머니 등 미성숙한 아이들만큼이나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많은 어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녀’는 예외다. 너무 현명하고 너무 솔직하고 너무 지혜롭고 너무 침착한… 물론 ‘그녀’는 애당초 특별한 어른으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러한 것처럼 ‘그녀’에게도 당황하여 쩔쩔매야 할 삶의 상황은 얼마든지있다. 종내는 주인공 역시 ‘그녀’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찾겠노라는 결말에 이르지만, 나는 아무래도 소설 속에서 밝혀질 듯 끝내 밝혀지지 않고 넘어가버린 ‘그녀’의 불가해하고 특별한 세계가 궁금하다.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이 어쩌면 소설보다 더 감동적이었다고 한다면, 칭찬일까 흉일까? 책을 덮으며 오랜만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사진의 배경으로 맞춤한 꽃이든 길가의 꽃이든,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꽃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보듬을 수 있는 그의 그녀와 그들의 그 사람이 더욱 절실하다. - 김별아 소설가 

 


성장이란 아름다운 죄
왁자지껄한 청소년소설에 지친 이에게 권하는 ‘정통’ 

 
“거울과 괘종시계는 서로 마주 보고 놓여 있었는데, 괘종시계가 데엥 데엥 울 때마다 거울은 주르륵 흘러내리기라도 하듯 흔들렸다. 거울 속 비뚤어지고 우굴쭈굴해진 괘종시계는, 사람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했다.”(58쪽) 일곱 살짜리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혹은 거울 안에서 내다보며) 그 시절을(혹은 먼 미래를) 회상한다. 모두들 공감하겠지만,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80년대는 아름답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지은 죄도 없이 죄인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이라니…. 소설에는 흑백사진처럼 오래된 마을과 금방이라도 폭삭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집들, 그리고 ‘목숨’을 가장 두렵게 여기는 오래된 사람들이 ‘자주·많이’ 등장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시골의 할머니에게 떠맡겨진 동화(冬花)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상처투성이로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가장 가까운 존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한 그 업보를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사랑의 상처, 인생의 좌절, 그리고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절망감들…. ‘마늘보다 더 독한 년’이라고 자부하며 그들 가난하고 불운한 사람들을 겪으며 지내는 동안, 동화는 어느덧 그 아름다운 풍경 속 ‘죄인들’을 가슴에 품은 아이로 성장해 있다. 흐린 거울처럼 아스라한 추억들을 읽다 보면, 어린 시절 익히 보았던 누군가가 책장을 들추고 걸어나올 듯한 기시감을 겪을 것이다. 왁자지껄한 청소년소설엔 질렸고, 이젠 좀 진지한 ‘정통 성장소설’이 당기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고 여전히 우리는 죄인처럼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지만, ‘목숨’을 가장 두렵게 여기는 우리는, ‘목숨’ 앞에서 떳떳하지 않은가. 성장이란, ‘아름다운 죄’를 지어버리는 일이니까 말이다. - 원종국 (소설가·출판 편집자)





아픈 시대에도 소년은 자라고
읽는 내내 인간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떠올리다
 

 역사를 길게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짧은 단위로 나누어보면 역사는 늘 뒷걸음질친다. 어렵사리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나 싶으면 금세 두 발짝 뒤로 물러나고, 두 발짝 나아갔나 싶으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거나 제자리걸음을 할 때마다 절망스럽다. 개인적으론 역사의 진보를 믿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은 퇴행인 것이다.

작금의 정치·사회·경제 상황을 보라. 지난한 1970~80년대를 건너온 사람 눈으로 보면 이미 숱하게 보고 겪은, 너무나 익숙한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 있고, 책상에 컴퓨터가 놓였다고 달라진 세상일까? 저 불량한 시대의 보존 가치 없는 유물들이 그간 다 사라졌으리라고 여기진 않았지만, 21세기라는 첨단의 시대에 흘러간 시대의 유물들이 이토록 완벽하게 살아날 줄은 몰랐다.

실천문학사에서 청소년 독자를 의식하고 펴내는 ‘담쟁이 문고’에 들어 있는 소설 두 권을 보는 내내 인간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떠올린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박영희의 <대통령이 죽었다>와 현기영의 <똥깅이>. 얼핏 보면 두 권 다 개인의 성장담으로 읽힌다. 그러나 사회와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개인이 있을 수 있을까?

개인의 행불행은 그가 속한 사회의 조건에서 결정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이 죽었다>의 인물을 보라.신문배달원 일을 하는 ‘고학생’은 왜 그 시기에 학교에 있지 않고, 집을 나와 살까? 작품 속에선 1970년대의 정치·사회·경제 상황 자체에 무게를 두지 않고 그저 시대 배경으로 깔았지만,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과연 시대와무관한 삶을 사는 걸까? 개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바위 같은 시대의 벽, 사회의 벽! 등장인물들은 그 벽을 마주하고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삶을 산다. 열심히 신문배달 일을 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우정을 쌓고, 여학생을 두고선 어찌할 수 없는 청춘의 열병을 앓는다. 가난하다고 꿈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청춘의 피가 뜨겁지 않겠는가?

<똥깅이>는 <대통령이 죽었다>에 비해 시대 조건이 훨씬 더 가혹하게 등장인물들의 삶에 파고든다. 제주4·3 대참사의 그늘이 드리우지 않은 데가 없기 때문이다. 주변 이웃은 물론 일가붙이들도 4·3의 그늘에서 자유로운 이가 없다. 그러기에 전체적인 작품 기조는 아무리 밝은 이야기를 내비쳐도 죽음의 냄새가 걷히지 않는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개구리를 잡아 죽을 끓여 먹거나 닭 모이로 주기도 했지만 그와 더불어 연상되는 풍경은 ‘가난’이다. 그런데 <똥깅이>에서는 개구리의 죽음조차도 예사롭지 않다. 뱀을 죽이는 소년의 행위는 거의 광기에 빠져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 그럴까? 바로 개인의 삶이 그가 사는 시대 상
황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 조건은 어린 소년들의 의식조차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두 작품 다 결국은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등장인물의 성장을 보여준다. 어떤 시대를 살든 아이들은 조금씩이나마 자란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칫 성장 강박증에 걸리면 성장의 모습을 아니 보여줌만 못할 수도 있다. 성장은 물리적인 시간이 흘렀다고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몸이 자라는 만치 자연스레 되는 것도 아니다. 소설은 성장의 서사를 태생적으로 바탕에 깔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의 성장은 무엇보다도 한 뼘 더 자란 영혼의 성장이다. 독자는 등장인물이 좌절하거나 패배하는 결말에서도성장의 징후를 읽어내는 것이다. - 박상률 (시인·청소년문학가)




 

편견에 맞서는 ‘정신의 백신’
익숙한 논리를 정당한 근거로 착각하는 이들을 위한 철학 퍼즐 

 한 재산 물려받는 사람들만 상속세에 반대하지 않는다. 바닥에서 맨주먹으로 일어선 이들도 상속세 폐지를소리 높여 외친다. 자식 고생시키기 싫어 힘겹게 모은 밑천을 국가가 뜯어간다는데 속이 편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수읽기는 얄팍하다. 상속세가 가벼워지면 어떤 결과가 올지 짚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의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자기처럼 맨주먹으로 시작할 젊은이들은 어찌되겠는가.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에 실린 철학 퍼즐의 일부다. 철학 퍼즐이란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모순된 생각을 말한다. 지은이 피터 케이브는 영국에서 김용옥만큼이나 유명한 철학자다. 그는 우리네 상식 속에 가득한 모순을 찬찬히 파헤쳐준다. 예를 들어보자. 인간을 살리기 위해 동물 실험을 해도 될까? 언뜻 보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를 만큼 당연한 주장으로 들린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상식은 어느덧 의문으로 바뀐다. 동물은 자기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실험은 그네들에게 고문과 다를 바 없다. 실험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자원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는 뼈가 타는 고통마저도 인류를 위한 희생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테다.

너무 익숙한 문제는 되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책에는 낯설게 보고 핵심 문제를 짚어내는 철학의 매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 일상에는 눈에 익은 논리를 정당한 근거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철학은 편견에 맞서는 ‘정신의 백신’이다. 청소년이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다. -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이 지구에 길을 잘못 찾아 날아든 한 마리 새
지적장애인 마티스의 시적이고 섬세한 마음이 소설 전체를 끌어가다 

마티스는 곧 마흔이 되는 지적장애인으로, 마흔 살인 누나와 둘이 삽니다. 그들의 집 앞에는 서로 꼭 끌어안고 있는 포플러 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들을 ‘마티스와 헤게 나무’라고 부릅니다.

마티스는 자신을 부양하느라 지친 누나의 기분을 풀어주고 기운도 줄 겸, 누나에게 “누나는 번개 같아”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첫 표현에서부터 마티스라는 인물과 그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외진 숲과 호수의 마을에 빠져들었습니다. “누나는 번개 같아”라고 표현하는 마티스의 넉살과 유머, 시적이고 순결하고 섬세한 마음이 소설 전체를 끌고 갑니다.

소설은 마티스가 생활비를 벌고자 일자리를 구하러 집을 나서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마티스는 정상적인 인간의 노동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신 마티스는 우연히 날아든 멧도요새의 날갯소리를 듣고 힘을 얻습니다. 한밤중에 날아든 멧도요새에게 마티스가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는 장면은, 마티스를 이 지구에 길을 잘못 찾아 날아든 한 마리 새- 혹은 우아한 새의 정령- 처럼 느끼게 합니다. 마티스는 슬프고 외로웠지만 그 마음은 너무나 다정하고 깨끗하기에, 마티스는 우리 마음의 순결하고 순수했던 부분을 자극합니다.

만약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이뤄주는 천사가 있어서 그를 원하는 곳으로 되돌려 보내준다면, 마티스는 누나와 단둘이 살던 그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멧도요새의 날갯짓, 마티스의 날갯짓, 천사의 날갯짓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얗고 깨끗한 무언가가 보름달 뜬 겨울호수 위 하늘로 고요히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 정혜윤 ( CBS 라디오 PD) 


 

누구를 위한 과학인가
지속 가능한 사회는 물론,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을 만드는 비법 

우리 사회에서 “누구를 위한?”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까? 구세대는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대신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물었고, 신세대는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 대신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를 묻는다. 과학에서도 비슷하다. 과학자들을 괴롭히는 질문은 “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의 발전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가?”이다.

예술과 문학에서는 비평가들이 독자에게 작품에 대해 성찰적으로 생각해보길 주문한다. 그렇지만 전문화되고 난해한 현대 과학에서는 비평이 설 땅이 좁다. 과학자 자신이 ‘누구를 위한’을 묻지 않는다면, 이를 대신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 학제 간 분야인 과학기술학(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STS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학과 만능주의에 눌리고 이과-문과의 경계에 끼어서 질식할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의 출현은 고맙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자들이 주축이 되어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성찰한 결과가 담겼기 때문이다. 책은 유전자 문제, 환경 문제, 정보기술(IT), 연구진실성, 국가연구개발정책 등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련에 대한 굵직한 주제를 쉽게 다루고 있다. 전반적인 강조점은 과학에 가치가 내재돼 있고, 과학기술이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며, 과학기술자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성찰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속 가능한 사회는 물론,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을 만드는비법이다.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 과정에서 닮아가는 것이기에.  -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가정을 던져보라 

 
유명한 작가 출신의 한 입학사정관은 “수험생, 획일화된 사고가 아쉽다”는 말로, 정답이 없는 구술에 정답처럼 똑같은 응답이 나오는 현실을 비판한다. 교수들도 다 읽기 힘든 고전들을 권장도서라 하여 제시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읽기 자료가 풍부하지 못한 현실도 암기식 모범 답안에 매달리게 한다. 그런 면에서 ‘라면 교양’ 시리즈는 주어진 상황에 해당되는 전형적인 답변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고 자신만의 가치 있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훌륭한 읽을거리다.

시리즈의 첫 책인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은 세계사를 주도해온 미국이 최강이 아니었다면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묻고 있다. 까놓고 말해 ‘글로벌’ 시대라기보다 ‘아메리카’ 시대에 가까운 지금, 미국의 의지에 따라 한 국가의 정치적 운명이 결정되고 세계 분쟁지도가 변하는 게 사실이다. ‘따지지도 묻지도 않았던’ 익숙한 것들이 실제로는 많이 다르기도 하다는 걸 ‘라
면 교양’ 시리즈를 읽으며 느껴볼 수 있다. 움직일 수 없(을 거라 여겨지)는 사실에 ‘만약 ~라면?’이라는 의미 있는 가정을 던져보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시리즈의 다른 책들인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내가 유전자 쇼핑으로 태어난 아이라면?>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는 군대, 유전자, 영어 등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전환된 가정을 통해 객관적인 시야에서, 또 주체적인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사고는 없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다만, 즐거운 사고의 과정이 있을 뿐!  - 박옥균 (도서 포털 리더스가이드 대표)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해보렴
조롱도 참아가며 풍차를 만드는 소년 이야기,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
 

 이 책은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에 있는 말라위의 한 소년이 들려주는 꿈에 대한 이야기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인 캄쾀바는 대기근으로 수확을 못하는 바람에 학비가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 학교에 가는 대신 부모를 도와 옥수수밭에서 일해야 했던 소년은 자신의 꿈을 잃지 않으려 매주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았던 소년은 평소 궁금했던 내용이 담긴 책을 읽으며 새로운 걸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년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책을 만난다. 그 책은 <에너지 이용>(Using Energy)이란 미국 교과서였고, 책 표지에는 풍차 사진이 있었다. 소년은 책에 나와 있는 풍차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집이 너무도 가난해 사용할 엄두도 못 내던 전기를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조롱을 참아가며 우여곡절 끝에 풍차를 완성한 소년. 놀랍게도 그 풍차는 소년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이 책에는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어려운 환경에서 새로운 앎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찾고, 그 책에 나온 내용을 용기 있게 시도하는 소년의 모습은 우리 청소년에게 좋은 자극이 될 듯하다. 삶에 지친 아이들에게 아프리카 소년 이야기는 견디기 힘든 절망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책의 끝머리에 나오는 소년의 말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무엇을 하든 난 내가 배운 한 가지를 기억할 것이다. 뭔가를 이루고 싶으면 해보아야 한다는 걸.” - 한상수 ( 사)행복한아침독서 이사장)   

 

 

번쩍번쩍 섬광처럼 다가오는 그 순간
튼튼한 몸 하나만 타고났을 뿐인 ‘괴물’ 성만이의 ‘화두’

누구나 애써 꽃미남이 돼야 하고, 말라깽이로 키만 껑충해야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성만’은 어쩌면 괴물이다. 그러나 이 괴물이 가장 크게 ‘괴물 짓’을 한 것은, “이게 사는 거야? 나는 뭣 때문에 이러고 사는 걸까?”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러고 단숨에 행동에 옮긴 것이다. 부모와 학교와 학원에 관리되는 요즘 아이들도 이런 고민은 달고 산다. 하지만 그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괴물은 좀체 보기 어렵다. 그래서 성만은 통쾌한 인물이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잘못된 구조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열해진 어른들과 온몸으로 정정당당 맞서는,이 시대에 더욱 절실한 인물이다. 그렇다고 성만은 영웅도 아니다. 요즘 청소년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재밌거나화려하지도 않다. 그저 평범하고 순박하다. 단지 튼튼한 몸 하나 타고났을 뿐.

성만이 마주쳤던 ‘순간들’은 섬광처럼 번쩍번쩍 내게도 어떤 순간들로 다가온다. 내 청소년기의 뜨거웠던 방황들을 생생히 되살려낸다. 자기연민으로만 바라보며 아름답다 했을 뿐, 그 시절에 진 빚으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깨달음은 도대체 얼마 만인가. 요즘 청소년들도 이 작품을 읽으면 자기 이야기로 품어안을 것이다.속에 숨죽이고 있던 청춘의 야성이 꿈틀 살아나 꿈꾸는 자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똑똑하고 가진 것 많은 아이들만이 이 세상에서 성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자기를 건져올릴 수 있으리라.  - 남호섭 (시인·간디학교 교사)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죽은 채로 산 아이가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뒤…
죽음에 대한 단도직입의 질문

열여섯 싱싱한 사내아이 하나가 죽었다. 밤길에 오토바이를 몰다 가로수에 부딪혀 즉사했다.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애,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여자애가 있었고, 오토바이 타는 남자가 멋있어 보이더라는 그 애의 말에덜컥 오토바이에 오르기는 했지만, 경솔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애는 그냥 죽은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하고 그 애는, 자기와 가장 친한 친구가 선물한 일기장 첫머리에 쓴다. 그 애는 자기가 죽었다고 가정하고 세상을 살아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달라 보일까?” 해서다. 그래놓고 계속 죽은 자로 살다가 그 애는 죽는다.

일기장을 선물한 친구인 화자 유미가 읽는 일기장의 구절들과 회상하는 친구와의 추억, 살아가는 나날들이 엇갈려 나오면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이야기는, 단도직입적으로 죽음의 의미를 묻는다. 죽음의 의미를 화자는 모른다고 하지만, 깨닫는 건 있다. “누군가 태어났다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죽음이 지극히 어이없고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열여섯 아이가 죽음의 돌발성, 인생의 허무함을 그토록 몸으로 체험하는 게 가슴 아프지만 대견하다. 자신은 영원히 위대하게 살 것만 같은 불타는 욕망과 자부심에 사로잡혀 세상의 산소를 맹렬히 연소시키는 사람들로 들끓는, 숨이 턱턱 막히는 세상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바람이 되고 빗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많아지는 세상, 그런 아이를 그리는 책이 많아지는 세상. 생각만 해도 시원해진다. - 김서정 (동화작가·번역가)





턱 괴고 이 책 펼치지 마라
훈계조의 고리타분도 오버액션의 유치함도 없다네

‘청소년소설’이라는 타이틀 앞에서 독자는 한 체급 낮은 상대를 만난 듯 느긋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쪽 팔로 턱 괴고 이 책을 펼쳤다가는 큰코다칠 확률이 높다. 정체성 혼란, 가족 간 갈등, 성(性)과 연애, 교육 현실의 각박함… 소재만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재료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단편집의 표제작인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기발하다. 모범생 영두는 어느 날 또 다른 자신인 영두가 폭력을휘두르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두 영두는 서로를 만난 뒤 자신이 여러 개의 우주 속에 여러 모습으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중우주 이론을 빌려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수작.

‘빨간 신호등’은 섬뜩하다. 청소년 성폭행 문제를 가해자의 시선으로 다룬 이 작품은 잘못된 성 의식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점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평범한 일화를 통해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오답 승리의 희망’은 사랑스럽다. 일명 ‘오승희 사건’을 둘러싼 교사의 탄압, 그에 맞서는 두 주인공의 소박한연대가 가공되지 않은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청소년에게도 주체 의식이 있고 정치적 견해가 있음을 세상은 왜 모를까. 미친 소 반대 촛불시위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도 청소년들이었는데 말이다.

나머지 단편들도 하나같이 미덥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성인작가가 쓴 청소년소설이 빠지기 쉬운 훈계조 말투의 고리타분함이 없다. 섣불리 10대의 세계로 편입하려다 빚어지는 오버액션의 유치함도 없다. 없어야 할 게 없으니 더더욱 실한 작품이 되었을 수밖에. - 김미월 (소설가)

 


똥주를 기다리거나, 똥주로 나서거나
똥주 같은 선생이 되고 싶다, 그리고 완득이 같은 제자 하나 만나면 좋겠다 

재밌다. 우스워 죽겠다. 만화 보는 기분이다. 아니다. 영화다. 인물들이 살아서 펄떡펄떡 내 앞에 나타난다.예뻐 죽겠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재미만 아니다. 가슴에 ‘쿵’ 내려앉는 무엇이 있다. 늘 변두리를 떠돌아야 하는 가난한 우리 이웃들과 이들보다 더 아픈 이주노동자의 삶, 이들과 함께 신명나는 판을 벌이는 똥주…. 똥주 선생은 쓰는 말투, 하는 행동이 어쩜 이렇게 리얼하면서도 멋있냐. 똥주 같은 담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아주사실적이고도 바람직한, 꿈에 그릴 만한 선생 모습이다. 나도 똥주 같은 선생이 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이미 꼰대 냄새가 난다. 자꾸 근엄해진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러니 될 일도 안 된다. 그리고 완득이 같은 제자하나 만나면 원이 없겠다. 그런데 요새는 다들 스스로 ‘공부 기계’가 되겠다고 앞장선다. 아니면 스스로 자기를 죽여버린다. ‘나 같은 놈이 뭘 해! 대강 살다 가는 거지’ 이런 식이다. 깡다구가 없다. 아이들은 청춘을 다 바치고어른들은 등골을 다 바쳐 아등바등했지만 결과가 이렇다. 학교 현장 문제 가운데 가장 큰 일이 이거 아닌가?

이 책, 어른들한테 주자. 어른들이 더 좋아할지 모른다. 고등학생 시절, 잃어버린 청춘을 다시 생각하면서 내 아이한테는 청춘을 돌려주자, 대오 각성할지도 모른다. 선생들 반드시 읽어야 한다. 똥주 같은 담임한테 배워야 한다. 우리 아이들 이 책 읽고 뭐라고 할까? “이런 똥주 같은 담임이 어딨어요. 이건 딴 나라 얘기예요. 이런 꽁이 어딨어.” 이럴까? 이러면서도 똥주를 기다리게 될 거다. 아니면 스스로 똥주로 나설지도 모른다. - 이상석 (부산 양운고 국어교사·제3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한국판 ‘1984’
현실에 밀착한 상상력으로 지금 사회 현실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네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종종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청소년 소설로서는 드물게도 이러한 상상력을 토대로 쓰였다. 한국의 교육이, 사회가 계속 이런 방향으로 치닫게 되면 가까운 미래에 어떤 끔찍한 세상이 도래할지를 현실에 밀착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일종의 ‘리얼한 공상과학(SF)’이다. 지하도시, 거주지역 불평등, 시계모자, 언론통제, 경찰폭력, 그리고 뒤바뀐 낮과 밤 등의 장치들은 독자에게 지금 사회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곳곳에 이명박 정부라는 당장의 현실을 의식한 설정들도 눈에 띈다. 약간의 과장을 곁들인다면, 청소년 소설로 쓰인 한국판 <1984>(조지 오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현실과 설정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캐릭터가 다소 약하고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점들이 소설적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불만스러울 수 있겠지만, 앞서 강조한 ‘현실적인 상상력’만으로도 이 소설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또 다른 훌륭한 점은 교육 문제와 사회 문제가 하나로 엮여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소설은 청소년들이 직접 중앙시계탑을 부수는 클라이맥스에서 마무리함으로써 ‘시계모자’를 없애는 것(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회를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중앙시계탑이 부서졌다고 해서 이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순차적으로 해결되는 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이런 결말을 통해 독자와청소년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개인의 기억을 화덕에서 꺼내다
질 좋은 효모로 빚은 호밀빵을 먹는 듯한 달콤하고 잔인한 성장소설

책을 덮는 순간 빵이 먹고 싶어졌다. 책에 나온 것처럼 “얇게 썬 햄을 돌돌 말아넣은 크루아상이나 담백하다 못해 밋밋한 허브향 베이글”이 간절했다. 야밤 독서의 허기를 달래며 마술까지 부릴 수 있는 케이크 한 조각이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 문제는 집 근처 빵집들이 밤 10시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다. 책을 끝낸 시간은 밤 12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노트북을 열고 조심스레 자판을 두들겼다. Wizardbakery.com.

사실 이곳은 저자의 블로그다. 그러나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해주는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이나 원하는 시간만큼 되감아 주는 타임 리와인더 머랭 쿠키 따위를 주문할 수는 없느냐고 덧글을 남기려다가 관뒀다. 대신 방명록에 글을 하나 썼다가 지웠다. “사실 처음 절반은 오락가락했어요. 아동 성폭행과 유아 유기로 가득한 현대 한국의 현실과 마술 쿠키를 파는 마술사라는 판타지가 시작부터 입에 찰싹찰싹 달라붙는 건 아니었거든요. 주인공의 내면이 지나치게 어른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머랭 쿠키를 먹은 미래와 먹지 않은 미래의 챕터를 따로 분리해서 책을 끝맺은 것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단 한 번도 책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정말 달콤하고 잔인한 성장소설입니다. 그나저나 타임 리와인더 머랭 쿠키는 정말로 판매를 안 하시나요?”

<위저드 베이커리>는 화덕에서 빵을 꺼내듯 개인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책이다.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망치느냐 혹은 껴안느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오래된 기억을 환유한다. 달콤한 케이크의 단맛을 기대했다가 질 좋은 효모로 빚은 호밀빵을 목으로 삼킨 기분이다.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는 소리다. - 김도훈 <씨네21> 기자




경고를 무시하는 ‘지구호’ 탑승객에게
환경적 재앙 앞에서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는 한 소녀의 기록
 


과도한 에너지 사용에 기댈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을 고수한다면 언젠가 지구는 타이타닉처럼 침몰할 것이라는 경고방송이 나오지만 ‘지구호’에 승선한 승객들은 방송을 무시한다. 참혹한 비극을 눈앞에 두고도 오직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이라고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경고하지만 물질적 성장을 위한 인간의 안간힘에는 휴일이 없다.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빌딩과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도 ‘지구호’는 멈춤을 모른다. 오직 성장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지구호의 승객들.

<카본 다이어리 2015>는 성장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참혹한 비극을 부를 것임을 강력하게 충고한다. 2015년 영국 정부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 배급제를 시행한다는 기사문과 함께 시작되는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 로라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써내려간 로라의 일기장은 가족과 음악을 사랑하는 열여섯 살 소녀의 성장 기록이기 때문
이다. 그 일기장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암울한 지구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사춘기 소녀의 비밀스런 성장의 고백을 엿듣는 일이기도 하고, 인류 전체가 직면할 재앙의 한가운데서 ‘지구호’의 미래를 가늠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안네의 일기>가 나치 점령하의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는 한 소녀의 기록이라면, <카본 다이어리 2015>는 환경적 재앙 앞에서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는 한 소녀의 기록이다. -김보일 (배재고 국어교사·한국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위원)

 


행복의 ‘카고 컬트’를 벗기자
인류학적 관점에서 경제 근본주의와 행복 신드롬을 다시 생각한다

 뉴기니의 원주민들은 자신들에게 풍요한 자본주의 물자를 처음 선보인 선교사들의 비행기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전혀 사용될 수 없는 비행장과 심지어 관제탑까지 나무로 지어놓고 선교사를 기다린다.그들의 종교와 풍요가 결합된 이 기이한 현상을 인류학자들은 ‘카고 컬트’라고 부른다. 후에 장치와 도구에 지나치게 매몰된 과학에 대해서도 ‘카고 컬트 사이언스’라는 말을 붙이게 되었다. 쓰지 신이치의 <행복의 경제학>은지금 한국은 물론 사실상 전세계가 신자유주의와 함께 맞닥뜨리고 있는 경제 근본주의와 행복 신드롬에 대해인류학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렇다. 지금 경제는 카고 컬트다. 쓰지 신이치는 ‘슬로 라이프’라는 개념을 제시한 유명한 학자이자 저술가다.

행복이라는 질문은 종종 빠져나올 수 없는,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궁극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질문으로 청자나 화자를 빠뜨리는 위험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마케팅 사회에서 인간의 주체성마저 ‘소비적 주체’로, 그야말로 존재론적으로 타락의 길을 걸으며, 구조적으로는 행복과 점점 더 먼 존재로 향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인, 그들이 자신의 삶을 잠깐이라도 되돌아볼 수 있는 길은 결국 책을 통하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쓰지 신이치는 경제 전쟁으로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의 경제학>이라는 카페에서 잠시 수다를 떨고 가자고 우리를 초청한다. 삶이 힘들다 해도 차 한잔 마시면서, 어느 인류학자의 다른 세상에 대한 얘기를 잠깐 들어보지 못할 것은 없지 않은가.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88만원 세대> 저자)



아프지만, 나를 알고 싶어
감상주의나 도덕주의를 최대한 배제한 중국인 입양아의 자기 탐구

얼굴은 중국인이지만 중국어나 중국 문화에는 문외한인 소녀가 있다. 어려서 친부모의 품을 떠나 독일인 양부모의 집에서 독일어와 독일 문화를 습득하고 자란 까닭이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그 소녀는 오래전부터 어렴풋하게만 품어왔던 한 가지 의문을 캐고 들어간다. 바로 자신의 친부모에 대한, 그리고 어떻게 해서 자신이 지금의 부모에게 입양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말이다.

독일 작가 카롤린 필립스의 <황허에 떨어진 꽃잎>은 입양아 출신의 중국계 독일인 소녀가 과거를 추적하며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비교적 흔한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유독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것은, 가령 똑같은 소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리얼 다큐의 와중에도 종종 끼어드는 감상주의나 도덕주의를 최대한 배제한 까닭이다. 저자는 중국 하면 떠오르는 오랜 문화 전통이나 눈부신 성장의 ‘빛’이 아니라, 이제는 거의 잊히다시피 한 불편한 과거의 ‘그늘’을 끄집어낸다. 저자의 이런 문제 제기가 신선하면서도 뜨끔한 까닭은 아직까지도 세계 최고의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단지 중국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청소년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런 무게감은 뜨인돌 비바비보 시리즈의 전반적인 특색이다. 인종차별, 폭력과 생존, 작은 실천을 통한 사회 개혁, 홀로코스트 등 각 권에서 다루는 소재는 가볍게 볼 만한 수준이아니다. 다시 말해 어른이 읽어도 감동의 질은 결코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박중서 (출판 기획자·번역가)

 

 ※ 본 기사는 한겨레21 [2009.10.30 제783호]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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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네스 2009-12-0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본 다이어리,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두권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는 아이 학급 필독서로 구입해 읽었고, 카본 다이어리는..정말 충격적이었으며 환경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꼈지요. 친환경 세제 사용,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금지, 3층이하 계단이용,,,,등등등..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누구에게나 선물하고 싶은 좋은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