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작년 이맘때, 노벨문학상 덕분에 처음 알게 된 모옌. 수상 이후 상의 권위를 등에 엎고 그의 책이 쏟아져 나왔다. 서점 구석에 먼지를 뒤집고 쳐박혀 있던 그의 작품들은 탁탁 먼지를 털어내곤 매대 위에 올랐다. 이미 그의 입담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나와 같이 작년 하반기 이후로 그의 이름을 자주 들어본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그 상이 주는 후광 처럼 왠지 어려운 작가 일듯한 느낌이 호감보다 먼저 찾아왔다. 조금 더 지켜보고 읽어 봐야지! 했던것이 해를 넘기고, 문학상이 머리에 지워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기억속에서 희미해져갔다. 그러던 중 서울국제도서전 리퍼브 도서들 사이에서 이 책은 다시 나를 향해 반짝였다. 

 

 

 장편소설은 부담스럽고, 어떤 작가의 '간'만 보고 싶을때. 그런때 집어 들게 되는게 단편집. 도서전 리퍼브 도서는 딱 이 간 보기에 적당했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고, 이야기 또한 안맞으면 몇개만 뽑아보면 되니까. 부담없이 사와서 또 부담없이 집에 쌓아둔것이 몇 개월. 넘치는 책을 곁에 두고 또 수많은 책을 사다 나르며 읽느라 몇 개의 계절을 넘긴 어느날, 바닥에 널브러진 이 '책'을 드디어 집어들었다. 그리고 주말을 통통하게 살찌웠다. 괜찮은 책을 사다가 집에 두면 '언젠가'는 그 책을 읽게 된다! 는 나의 평소 책 구매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그의 재치와 입담에 주말내내 나는 꽤 괜찮은 오후들을 보냈다. 

 

 

 책은 꼭꼭 채운 세 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나서 어느 포스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의 '입담' 이라는 단어를 책을 읽자마자 피부로 느꼈다. 그는 중국 보통 사람들, 혹은 그들이 일컫는 '인민'의 삶을 정말 또렷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숙련노동자로 일하다 명예퇴직 직전에 해고되고 밥 멀이가 막막한 '딩 사부'와 어린 나이에 이미 끼를 가져 수많은 암소에게 씨를 뿌린 수소 '솽지'의 눈물나는 거세 수기, 곱사등이지만 운동에 있어선 으뜸인 주충런. 나열하고 보면 정말 특이한! 이 들의 이야기가 세 단편 속에 꽉 차 있다.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뒤따라 가다가, 아니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니 하며 중간에 쑥 끼어들어 주르륵 이야기 속의 다른 이야기를 쏟아내는 품이 마치 옛날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중심 이야기의 축으로 잊지 않고 돌아오는 모옌의 솜씨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이 작가는 중국의 작가 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세 단편 속에 꽉 차 있다. 모옌 이라는 소설가의 이름보다는 '중국 인민'의 모습 이라 칭해도 좋을 듯 하다. 도서전에서 이 책을 집어 오면서 괜찮으면 문동에서 나온 '열세걸음'도 사서 봐야지, 했는데 아마 내일 당장 구매 버튼을 누를 듯 하다. 

 

 

 노벨상 작가들은 어렵기만 했던 예전의 기억들을 조금씩 걷어가는 요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모옌 등등의 노벨문학상이 집어주는 작가들을 따라 읽어가는 재미가 점점 차오른다. 이 기세를 몰아 이번 년도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의 책들도 꼭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앨리스의 생활 방식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 '아 혹시 이건 그저그럴듯한 연애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 그만읽기를 고민하던 책. 내 예감은 깔끔하게 빗나가고 말았지만...이 책은 생각하던 것 보다 더 큰 생각거리 들을 던져 준다. 장은진 작가님의 책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읽고 전작들을 역주행 하다 읽게된 이 책은 가벼운 문체나 흥미로운 관계설정을 넘어서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뭔가 찝찝한 기분을 남긴다. 아마, 나 또한 앨리스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어쩌면 그녀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른이라는 나이, 대한민국, 더구나 서울에서 그 나이에 부모에게 물려받은 '한 재산' 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집 갖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민석은 그런 기회를 잡은 남자, 시세보다 싼 가격에 산 집 306호. 이 행운과 같은 일은 입주 첫날 부터 신기한 이웃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10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온 적 없다는 새 이웃은 그에겐 루이스, 자신에게는 앨리스라는 별명을 하사하며 특이한 이웃간의 관계가 시작된다. 인터폰 명령과 '쥐구멍'으로 쇠파이프를 내 보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며 본인이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앨리스는 천천히 민석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처음에 민석은,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그녀의 존재를 상상하며 달갑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서서히 인정한다. 그 속에도 삶이 있다는 사실을. 그냥 그렇게 살 것을 선택한 것일 뿐이라는 걸. 나또한 그녀의 이런 비상식적 태도가 처음에는 너무 거슬렸다. 도입부에 민석의 이야기 이외에 그녀, K, P의 이야기를 통해 앨리스가 바로 그녀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발생한 그런 일들이 왜 그렇게 극단적인 은둔생활로 이어지게 되었는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발생한 일이 그에게 어떤 모양의 상처를 남기며, 그 상처가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 지는 전적으로 그 '누군가'의 몫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상처 받은 그 누군가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 이므로.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줄 것과 보여주지 않을 것을 선택하며 산다. 적당히 금을 긋고 벽을 치며 내 자신을 보호한다. 아마도 상처받지 않기 위하여. 앨리스가 선택한 극단적인 방식은 아마 '극단적이지' 않은 방식 일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모습을 숨겼을 뿐, 그녀는 보통 사람들처럼 외부와 소통하고 선택하고 대화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받을 상처를 최소화 한다는 점에서, 상처받고 무시당할까 전전긍긍하는 나보다 훨씬 용감하다. 결국 '고립'되었다는 건 상대적이다. 그녀와 같은 물리적 고립보단 아마도 정서적인 고립이 더 무섭지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속 305호는 잠겨 있는지, 열려있는지, 소통하는지, 막혀 있는지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마음속에 305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우리는 참 같은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앨리스의 생활 방식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장바구니담기


번역은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습득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나는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바뀌는 순간 맛보게 되는 오묘함에 놀라곤 한다. 나를 영매로 언어가 번역되는 그 순간이 바로 거대한 나라와 나라가, 역사와 역사가 소통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갈등과 혼돈과 오해가 풀리고 이해되는 시점. 그 시점에 나는 아무리 다른 언어와 문화, 그리고 생활 방식을 가졌더라도 살아간다는 건 어디서나 처절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므로 번역은 늘 신중 정확해야 한다. 벤야민의 말처럼 원문을 의미에 맞게 재현하는 자유와 원문에 충실하려는 성실성이 번역가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결국 번역이란 바벨탑에 분노한 신에 의해 생겨난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신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리석지만 신은 현명하다. 혼잡한 언어 때문에 인간은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65쪽

"책이 아무리 훌륭하고 완벽해도 끔찍한 현실을 따라오진 못해. 진짜 완벽한 게 옆에 있는데 왜 가짜에 열광해야 되는데? 책을 읽는 건 자기 삶이 그럴듯하지 않다거나 격정적이지 않다거나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방증으로 느껴져. 책은 해결책이 못 돼."-72쪽

마음만 맞는다면 친구는 평생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하나가 마음을 돌려 버리면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99쪽

"연극은 이해 안 되는 걸 이해하게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해 안되는 걸 이해해야만 할 때가 있지. 벌어져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연극은 끝나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140쪽

"아무리 얘기해도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아. 보이지 않으니 믿지 않는 거라고. 당신은 벌써 증명을 요구하고 있잖아. 진실에는 증명이 필요없어. 그 자체가 증명이니까. 증명은 거짓에나 필요해. 당신은 믿어야 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구분 못 하고 있어."-153쪽

"이런 처지니까. 동물은 인간의 생을 압축해서 보여 줘. 눈과 귀가 멀고 걷지 못하고. 나중에는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생."-179쪽

"여행을 해 보지 않은 칸트는 독서와 상상력 만으로 탐험가보다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어. 나 또한 인터넷으로 사귄 친구가 수백 명이야.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하겠지.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인간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을 가진 곳이야. 외모, 학벌, 동, 집안 따위를 따지지 않고도 정신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180쪽

"너같이 운 좋고, 부족한 거 없이 자란 놈들은 이해할 줄 몰라. 이유를 먼저 따지려고 하지. 이유는 과거야. 중요한 건 현재고. 현재에는 이해만 존재해. 너 같은 놈은 누님이 은둔하게 된 과거이유를 캐내는 데만 관심 있고 현재 삶은 이해하려고 들지 않잖아.삶의 방식은 다양해. 자신의 삶을 견디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라 선택한 거겠지."-186쪽

삶이란 냄새나는 시궁창에 빠져 있는 것과 같지만 살기 위해서는 그곳에서도 음식을 주워 먹어야 할 때가 있다. 끔찍하게 싫고 구역질이 나더라도. 그러려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부터 이겨 내야 한다.-217쪽

그녀는 그떄 알았다. 어떤 방식이든,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사람은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짝을 이루려 하고, 그 짝을 끝까지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혼자가 된다는 건 외롭다기보다 무서운 것이다.-240쪽

이해는 삶을 지속시킨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절반의 은둔자이거나 잠재된 은둔자다. 그리고 누구나 다 결국은 외톨이다.(중략) 내가 숨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감추어 외톨이로 만든다. 오늘날 은둔의 개념은 모호해지고 확장된다. 반드시 어떤 공간에 숨어들지 않더라도 자기 안에 갇혀 마음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은둔자다. 어쩌면 세상을 피해 숨는 건 약하기 떄문이 아니라 강하고 용기 있기 떄문에 선택할 수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 사회와 인간을 더 이상 증오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추는 것. 세상을 피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한 또 다른 도전이자 애정. -250쪽

나쁜 일이 지나고 나면 삶은 더욱 견고해지는 법이다. 불행하고 불길한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될 수 있다.-360쪽

사람은 누간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서 함께 숨쉬고 또 상처와 고통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방식이 다를 뿐 그녀 또한 그들 속에 섞여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한때는 낭비라고 호언했던 그런 삶을, 결국 그녀가 살아오고 있었다. 은둔이란 세상과의 결별이 아니라 세상과의 또 다른 관계 맺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삶은 불행하지 않았다.-361쪽

모두를 감쪽같이 속였던 지나, 연극배우 수연, 텍스트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나의 글과 책들. 모두들 가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어쩌면, 진짜 자기 삶을 살고 있었던 건 그녀인지도 모르겠다. 305호 그곳에서, 자기만의 존재 방식으로 살고 있는, 자기만의 생활 방식으로 소통하고 또 사랑하며 살고 있는 그녀, 앨리스.-37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장바구니담기


(중략)그러나 어딜 가도 인간은 선택과 결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나보다. 어느 한쪽을 고르지 않으면 삶은 결코 굴러가지 않으니 말이다. -26쪽

신뢰가 깊어지면 지배가 되기도 한다.-52쪽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삶의 시작은 기쁨이지만 삶의 결말은 결국 슬픈 것이다.' -70쪽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글쓰기가 유혹이 된다고 했던 어떤 작가의 말처럼, 말에 서툰 자는 글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아니 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걸 포기한 대신 글을 선택했다. 글은 편했고, 자연히 글을 읽거나 쓰면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96-97쪽

극심한 취기와 우울 속에서 나는 앞으로 여행을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내렸다. 여행에 대한 결정이 끝나자 곧바로 생에 대한 갖가지 다른 결정들이 순서를 기다렸다 내게 달려들었다. 급기야 그 결정은 극한까지, 앞으로 살 것인지 말 것인지로까지 옮겨갔다. 짧은 순간 산다는 건 참기 힘든 고통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다가왔고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문득, 정말 죽고 싶어졌다. 나중에는 충동적으로 '죽자'고 마음 속 다른 내가 혼자 결정을 내려버렸다. -102쪽

"서머싯 몸이 이런 말을 했어요.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자기 작품을 읽고 감동을 느끼고, 사람의 혼을 움직여 연민이나 공포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면 그보다 더 멋진 힘의 행사는 없다고."-128쪽

스포트라이트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슬럼프에 빠지게도 한다. 성정과 변화의 과정 없이 초반부터 과속으로 치고 나간 자들은 결국에는 불행해지고, 간혹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주저앉게 되기도 한다. 가불받은 월급처럼, 그들은 단지 자신의 행복을 남들보다 앞당겨 써버린 자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각자에게 할당된 행복의 양이 정해져 있고 그 행복을 자신의 의지대로 배치할 수 있는 거라면, 그 행복은 앞에 놓는게 좋을까 뒤에 놓는게 좋을까 . 나라면 뒤에 배치하겠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173쪽

헤어진다는 건 그런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의 자기 상태로 돌아가는 것.-197쪽

"세상이......원래......불쌍하다고 사정을 봐주진 않잖아요. 더 가혹하면 가혹했지......"-244쪽

전화 받는 걸 늘 귀찮아하던 녀석이었는데, 일상의 습관 하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운했던 모양이다. 우리의 통화는 다른 때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다. 습관과의 이별이란 원래가 서운한 법이다. 그 습관이 내면과 일상의 평화에 기여했다면 더욱. 나의 여행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나는 다른 습관에 적응해야 하고, 다른 일상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진정한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259쪽

그후 나는 생의 모든 일은 하루 사이에 일어난다는 걸 알게되었다.-26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서점에 나가보면 서평책이 참 많다. 나보다 책을 훨씬 더 많이 읽는 사람들의 술술 풀려가는 글을 볼 수 있어서 가장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그들의 '리스트' 다. 리뷰는 열심히 쓰지 않지만 그동안 열심히 알라딘과 오프라인을 들랑 거리며 책을 고르며 느꼈던건... 책 고르는 건 정말 어렵다! 다. 가끔 괜찮은, 혹은 신뢰가 가는 인물이 독서에세이를 내면 가장 먼저 슥슥 넘겨보며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건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단 하루 만에 내 마음을 찡하게 했던 이 책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정혜윤씨의 <책읽기 좋은날>의 한 꼭지에서 괜찮을까 싶어 집어 든 것이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하이퍼링크 같은 책 읽기...특히나 나중에 고른 그 책이 정말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면, 그 책을 소개해 준 전 책에 뽀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렇든 저렇든 내 손에 굴러들어온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주말의 무기력을 한번에 날려주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몇 호흡씩 끊어 읽곤 했는데 호흡도 편하고 내용도 술술 넘어갔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 말을 심하게 더듬던 청년 한지훈과 늙은 강아지 와조의 이유없는 여행 속으로 훅 들어간다. 그의 여행의 규칙은 간단하다. 길에서 만난 '유의미한' 사람에게 번호를 부여해 주고 그날 밤 잠들기 전에 그들에게 편지를 쓴 후 답장을 기다린다. 답장이 올때까지, 여행은 계속된다. 한지훈은 자신을 0으로 설정하고 만난 사람의 순서대로 숫자를 붙여 나간다. 그리고 그 숫자속에 이야기를 채운다.

 

 

 그러다 한지훈과 와조는 자신의 책을 스스로 파는 소설가 751을 만난다. 일반적이지 않았던 그 만남은 한지훈과 와조와 751 이라는 새로운 동행을 만든다. 함께 책을 팔고 잠시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 한지훈이 왜 그토록 '의미없는' 여행을 계속 하고 있는지, 그가 그 여행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케 된다. 그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한 여행. 단 하루 동안 그에게 일어났던 상실을 인정하기 위한 여행. 한지훈을 보면서 한 사람에게 패어진 상처를 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여행을 시작한 그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한지훈은 길에서 만난 번호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낸다. 절친을 집 주변에 짱박아 놓곤 매일 자신의 우체통을 사수하게 한다.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라는 체념적인 말이 매일 이어졌지만 그는 쉴새없이 편지를 보낸다. 그를 돌아오게 할 한통의 답장은, 그의 여행 전엔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와조로 인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 덕분에 그를 돌아오게 할 답장을 만났다. 아이러니 처럼 생긴 이 일들이 가슴을 쳤다. 가끔씩 우리는, 아주 기다리던 일들을 우연히 만나곤 한다. 그리고 그 우연한 일들이 내 발을 현실위로 사뿐히 올려 준다. 한지훈은 기다리던 '답장'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친구 와조로 인해 현실위에 사뿐히 섰다. 왠지...그는 참 잘 지내고 있을 것 같다. 마음 한 켠이 싸해 지는...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