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같은 나의 연인
우야마 게이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고백한 적이 있나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일본 작가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유의 시니컬함이 싫고, 일본어로 된 등장인물의 이름들도 한눈에 딱 들어오지 않아 너무 어려워 싫다. 출간하기만 하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일본 작가의 책을 몇 번이나 읽어보려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로맨스부터 추리물까지 장르 구분 없이 일본 애니메이션은 참 좋아한다. 탄탄한 스토리 하며 특유의 감성이 드러나기 때문. 이런 걸 보면 딱히 일본 작품을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또다시 소설 읽기에 도전해보지만,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하고 덮기만 했다. 그래도 포기는 없는 법! 꾸준히 시도하고 있었는데, 최근 흥미로운 스토리에 드디어 끝을 본 반전소설이 있으니 바로 우야마 게이스케의 <벚꽃 같은 나의 연인>이다.


언젠가부터 매년 벚꽃 시즌만을 기다리는지라 벚꽃 그림이나 사진만 봐도 마음이 설레곤 한다. (이 책을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보기만 해도 달달할 것만 같은 표지와 제목 때문에 순간 멈칫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대로 직진했다. 드라마 각본가에 그동안 펴낸 소설이 영화화까지 되었고, 그로 인해 작년에 내한까지 했다고 하니 꽤 유명한 작가인 듯싶었다. 책 사이에 끼어있는 엽서가 인쇄물인듯했는데, 알고 보니 친필 사인이었다. 이를 보니 왠지 더 특별해진 것 같기도 하고? 가까워진 듯한 느낌도 들어서 왠지 잘 맞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더라.


벚꽃은 화려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찰나인 것을 알기에, 제목만으로 대충 어떤 내용일지 빤히 그려졌다. (분명 다들 같은 생각이리라) 그런 이유로 책을 고르는 것은 순식간이었지만 책을 손에 쥐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왠지 마음의 준비 혹은 여유가 없을 때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속 시끄러운데 슬픈 이야기까지 봐 버리면 너무 우울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복잡한 일이 마무리되고, 조금의 여유가 생겼을 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책 겉표지 내용도 읽어보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 겉표지에 모든 내용이 다 나와 있었다.

'벚꽃처럼 덧없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이 말 한마디에 모든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우연히 들어간 미용실에서 만난 미용사 미사키(여자 주인공)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하루토(남자 주인공). 그들의 순수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참 유치하다 싶기도 하면서, 순수하면서도 예쁜 그들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다. 소설이라는 건,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한 힘이 있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서 인물을 그려 나가고 배경을 상상하며 내가 만들어낸 세계에 푹 빠져들어 그대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 내는 것. 멍하게 활자를 읽어 내려가다가도 어느새 푹 빠져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손에서 책을 뗄 수 없게끔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특히, 참 흔해빠진 이야기라고 치부하면서도 무시하지 않고 이 밝은 세계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것, 독자를 휘어잡는 힘이 <벚꽃 같은 나의 연인> 작가 우야마 게이스케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아무 맥락도 없이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 황당한 순간에도 '그래도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어이없는 대담함 혹은 순수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혼자만 했다면 책을 당장 덮었을 텐데, 여자 주인공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저예요?' 단순한 이야기고 쉽게 읽히지만, 절대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 흰색 도화지에 정말 구체적인 배경, 인물의 모습이 하나하나 그려지더니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생생했다.


가상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가도 자꾸만 현실의 추억에 빠지게끔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들이 곳곳에 있다. 이를테면 '사귄 지 6년 가까이 됐지만 얘는 지금도 나를 많이 좋아해 줘.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말은 누군가에게 이렇게 끝없는 사랑을 받을 때 쓰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라는 대사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나를 찾게 되는, 공감대를 만드는 순간.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사람이 바뀌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도 곳곳에 있다. 겉모습만 보고, 물질만 보고, 이해타산 따져가며 만나는 사람들에 결국 질려 버리게 되는 현실과는 달리 정말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득한 장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다. 그냥 슬픈 연애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매력이 가득한 반전소설일 줄이야.


'일본 소설은 정말 별로다'라는 편견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줬던 이야기, <벚꽃 같은 나의 연인>. 아주 오랜만에 파스텔톤의 예쁜 세계에 빠져들었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참 허하면서도 따뜻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참 어린 친구들 같았는데, 이렇게 성숙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면 이런 게 가능했을까. 진짜 사랑이라는 건 이런 걸까. 생각에 생각을 하게 되는 반전소설. 연령대에 따라 느끼는 것도 참 다를 것 같은 소설,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당신이 좋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