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즈코 상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 펄북스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겨울에는 산에 장작을 주우러 갔다. 마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할머니 같았다. 나는 그 일을 즐겼다. 장작불 지피는 걸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짓는 것도 내 일이었다. 나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졌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불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여겼다. 퍼렇고 새빨갛게 몸을 비틀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솥이 끓어 넘치려 하면 붉은 장작불을 꺼내 뜬숯 단지에 넣어 끄면서 아쉬워했다. 나는 방화범이 될 소질이 충분했던 듯싶다.
사노 요코는 섬세한 감정 묘사와 예민한 시선이 뛰어난 작가다.
거기에 톡 쏘는 사이다처럼 청량한 위트와 엉뚱함이 더해져
소위 말하는 '치명적 매력'을 가진다.
<시즈코 상>을 읽으면 사노 요코 유년의 시절을 많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이 어릴 때부터 벼려져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전작 <사는 게 뭐라고>를 읽으며 그 시크함과 담백함에 빠져들어
너무 신나서 좋아하는 후배에게 읽으라고 건넸던 기억이 난다.
너무너무 좋은 책을 읽으면 그때그때마다 누군가가 떠오르며
당장 달려가 그, 또는 그녀에게 막 권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내게 아주 좋았던 책들은 의외로 내 수중에 없는 책이 많다.
프레모 레비의 책이 그랬고, 사노 요코와 김훈과 정희진의 책이 그렇다.
이 책도 달려가 당장 읽어보라고 막 권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
이 책은 다행히 누군가에게 막 권하고도 내 수중에 남겨질 한 권이 더 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630/pimg_7713161671445715.jpg)
겨울에는 산에 장작을 주우러 갔다. 마치 옛날이야기에 나 오는 할머니 같았다. 나는 그 일을 즐겼다. 장작불 지피는 걸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짓는 것도 내 일이었다. 나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졌다. 한순간 도 멈추지 않는 불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라 여겼다. 퍼렇고 새빨갛게 몸을 비틀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 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솥이 끓어 넘치려 하 면 붉은 장작불을 꺼내 뜬숯 단지에 넣어 끄면서 아쉬워했다. 나는 방화범이 될 소질이 충분했던 듯싶다. p.75
나는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던 것 같다. 분명 밉살 스러운 아이의 분위기를 풍겼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밉살스 러운 아이였다. 나는 동생 다카시를 커다란 등나무 시렁에서 떨어뜨린 적도 있다. 그리고 저녁 무렵 어둑어둑해진 모래밭에 다카시의 공을 묻어두고 온 적도 있다. 다카시가 그전에 내 공을 도랑에 내던 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카시가 한 일을 엄마에게 일러바치 진 않았다. 이르면 "네가 먼저 무슨 짓을 저질렀겠지."라면서 눈을 흘겼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그런 눈초리를 받을 바에는 흙투성이가 되어가며 뒹굴고 엉겨 붙어 싸우는 편이 나았다. p.101
엄마와 나 사이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없어야 할 일도 많았다. p.1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