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너머) 1
온다 리쿠 지음, 박정임 옮김 / 너머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눈앞에서 실존하는 것에 의심을 품으면

온 세계가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는 공포!



한 번씩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멍하니 바라보곤 합니다. 

몸뚱이에서 갈라진 팔, 다리. 그리고 그 끝에서 또 다섯 개의 가락으로 나누어진 모양이 '경이롭다'는 느낌보다는 사실 '으~ 이상해' 하는 그런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좀 개인적인 느낌에 관한 썰을 푸는 이유는 온다 리쿠의 《메이즈》를 읽다가 느낀 섬뜩함 때문입니다.



미쓰루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나의 손, 나의 두 손이다. 움직이려고 생각하면 움직인다. 피부 속에는 뼈가 있고 피도 흐르고 있다. 그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내 의식이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사실일까. -온다 리쿠, 《메이즈》 250쪽

분명, 내 의지로 움직이고 저 피부 속에 뼈가 있다는 것도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도 너무나 확실한 '사실'인데 그럼에도 '정말로 사실일까'하는 극중 인물 미쓰루의 의문을 이상한 지점에서 공감한다고나 할까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계속 쳐다보면 어느새 꾸물꾸물 다섯 개의 가락의 나누어지는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기이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비현실적인 느낌에 조금 더 빠져들다 보면 '이런 게 있을 리가 없어' 하며 존재 자체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희한한 느낌에 빠지는 것은... 너무 개인적인 경험이겠지요?^^;;  눈앞에서 실존하는 것에 의심을 품게 되면 온 세계가 무너져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에서 공포를 느끼곤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곳, 있을 수 없는 곳

왜, 어디로, 사람들은 사라지는가


온다 리쿠의  《메이즈는 '존재하지 않는 곳' '있을 수 없는 곳'이라 불리는 서아시아 땅끝 어느 지역의 미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수백 년간 원인도 모른 체 이곳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추정하건대 적어도 삼백 명. 극소수의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자신은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 다른 사람은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 추측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두부'라고 빗대어지는 흰색의 구조물에 모인 네 명의 남자. 그중 메구미, 스콧, 셀림, 이 세 명의 남자는 무언가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 중인 것 같습니다. 이들 중 메구미의 요청으로 함께 하게 된 미쓰루는 왠지 신기루처럼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 묘한 기운을 가진 그 유적지에서 사람들이 어떤 규칙으로 사라지는가를 알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신기한 이야기나 괴담 같은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불안감 뿜뿜하는 '두부(라 쓰고 흰색 유적지라 읽는다)'에 얽힌 이야기는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미쓰루의 추리가 더해지며 긴장감을 가집니다. 빨려들어 바삐 책장을 넘기다 문득 숨 막힐 듯한 공포감을 만났습니다.(나 뭐 문제있는 거신가) 


피가 낭자한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느 도깨비처럼 "이런 느낌 처음이야, 정말이야. 처음 들어봐, 처음!"하고 외칠 만큼 기상천외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제가 숨 막힐 듯한 공포감을 느낀 건 내내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하는 제삼자처럼 평정을 유지하던 인물(미쓰루)이 순간 훅ㅡ 하고 밀려드는 공포에 발작처럼 그 공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위의 인용과 연결되는 같은 페이지입니다. 



숨이 막혀왔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 곧 너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야 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너 하나 사라진대도 아무도 힘들어하지 않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네가 없어져도 이 풍경은 수백년 동안 변하지 않아.

무섭다. 이곳에 있는 것이 무섭다. -온다 리쿠, 《메이즈》 250쪽

제가 공포를 느낀 지점은 미쓰루의 지점과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황량하고 드넓으나 폐쇄된 곳. 적막함만이 공간을 메우는 그곳에서 아무도 없다는 타인의 '부재'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미쓰루의 공포와 함께 그런 비현실적이고 불가사의한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이 갑자기 피부로 느껴져와 소오름 돋게 두려웠다고나 할까요. 완벽한 정적과 완벽히 혼자인 느낌이 갑자기 너무 현실감 있게  느껴져 정말 오싹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곳' '있을 수 없는 곳' 

잿빛 가시넝쿨에 둘러싸여 기괴하게 빛나고 있는 흰 유적지와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하나 하나 가설을 세워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허겁지겁 책장을 넘기게 합니다. 시간과 존재가 별처럼 반짝이는 몽환적 장면도 압권! 

얼마 전 《꿀벌과 천둥》으로 수많은 독자를 홀린 온다 리쿠의 작품입니다. 



한없이 깊은 파랑.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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