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온다 - 늑대를 사랑한 남자의 야생일기, 2020 우수환경도서 선정도서
최현명 지음 / 양철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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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의 증언에 따르면 꿈에 늑대에 발뒤꿈치를 콱- 깨물리고 태어난 게 나란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와서인지 왠지 모르게 늑대에겐 친밀감을 느끼는데 이 늑대가 한반도에선 이미 오래전에 멸종된 동물이다. 늑대에 관한 국내 저자의 책이라니...

2002년부터 늑대를 쫓아 헤매고 다녔다는 포유류 전문가 최현명 선생님은 이십 년이 채 못 되는 시간 동안 마흔 번 가까이 그들의 땅을 찾았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여행의 기록. 늑대를 찾아 떠난 여행이 일기 형식으로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고 몇 컷의 사진, 여행 밖 이야기가 들어있다. 늑대를 찾아 떠난 여행의 기록도 흥미진진하지만 나는 '여행 밖 이야기'를 훨씬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나라에서 늑대가 어떻게 사라져갔고 동물원을 어떻게 떠돌았고 개와 늑대의 간극에 관한 이야기들의 몰입감이 상당하다. '늑대들의 수난사'에서는 늑대와 까마귀가 완벽한 공생 관계라는 부분에서 혼자 씩- 웃었다.

늑대 태몽으로 태어난 나의 졸업 논문 주제는 '까마귀'다. 까마귀의 상징 변천사에 관한 고찰... 정도의 내용이었다.(내 논문 어디간겨-_-) 신성한 길조로 여겨지던 삼족오나 본초강목에서 자오(慈烏)로 칭하는 것, '반포지효'라는 말에서 등장하듯 효의 아이콘이었던 까마귀가 언제부터 '죽음'을 상징하고, 아침부터 울면 나쁜 소식을 전한다는 흉조의 아이콘이 되었나..하는 주제였는데 고백하면, 결론은 좀 흐지부지였다. 처음엔 일제 영향이라고 의심해 몰아가려고 했는데 그건 아니라 실패하고 어떻게든 결론은 내야겠기에 '죽음'의 의미가 변했다는 식으로 허겁지겁 결론을 냈던 조악한 졸업 논문이었다. 어쨌건 그런 이유로 나는 까마귀에도 친밀감을 느끼는데 늑대와 까마귀가 완벽한 공생 관계라니 혼자 웃을 수밖에.(알고보니 운명적 만남)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쓰였던 건 그렇게 늑대를 쫓아다니는 저자가 끊임없이 늑대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어떤 에피소드쯤에서는 아낌없이 정을 퍼부을 것 같은 순간에도, 애틋한 마음에 절로 발길이 갈 것 같은 순간에도, 저자는 그러지 않는다.(나는 이것이 초인적 인내로 느껴진다. 물론 저자는 이런 감정선에서도 나처럼 호들갑스럽지 않다) 아마 이분은 야생은 야생의 것이어야 한다는, 그래야 지킬 수 있다는 야생의 본능을 가진 것 같다.

사라졌다는... 이제는 영원히 없다는 상실감에 내내 마음이 아린 책. 심지어 평소에 이 땅에서 멸종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했었는데.


해가 뜰 무렵과 해가 질 무렵, 그러니까 빛과 어둠이 서로 섞여들 때가 가장 아까운 시간대다. 이때 동물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맘껏 즐겨야 한다.
혼자 숲속을 걸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곁을 지키는 친구라곤 그림자뿐인데다, 그는 참견하는 법이 없다.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만 가득 차고, 질문도 답도 단순해진다. 타인을 배려할 필요도, 개인적인 호기심을 억누를 필요도 없다. 혼자일 때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할 수가 있는 것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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