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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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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수많은 가치들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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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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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체계적인 내용이 담겨 있고, 이 책을 통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사색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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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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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기대되네요~! 출간되면 바로 사야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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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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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컨대, 이 책을 중학교 시절 구입했었다. 노골적인 성애 묘사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죽음'이라는 기즈키의 사건이 가져오는 주인공 와타나베 삶의 전면적 변화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 지금에서까지 틈날 때마다 매년 봄이면 다시 이 책을 접하곤 한다. 지금도 소설 표제지에 '매년 봄마다 이 책을 다시 읽곤 한다. 상실은 과연 치유될 것인가'라고 쓰인 내 손글씨가 보이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언제나처럼 씁쓸하다. 그 당시 나는, '밝은 세계'속에서 '어두운 세계'를 갈망하는 그런 유아기적 소망만을 안고 있었으니까. 지금에서야 내게서 멀어진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노라면 '죽음'이라는 사건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의 '상실'이라는 작용으로 인해 내게 미쳤던 수많은 사건과 일들을 깨닫고 가슴 아파한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좀 더 다정하지 못했을까, 하며.

 

     그땐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 책의 메시지가 지금와서 오롯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먼지나는 내 서가에서 이 책을 다시금 찾았다. 누렇고 때가 끼인 책 속에 찢어진 부분과 무언가 오염된 부분이 눈에 띄었지만, 그래서였을까. 내 성장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기뻤다. 당시는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이런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소설같은 굉장한 체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만이 자리잡고 있었다면,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런 일들은 오히려 겪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때론 굉장한 체험으로 자신을 성숙시키기도 하지만, 내 경우엔 퇴행하고 말았다.


     책을 읽다보면 나는 와타나베가 되기도 하고, 나오코가 되기도 하고, 미도리가 되기도 하고, 나가사와까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가 이들과 다른 종류의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역시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사람을 경험하고 또 그 사람이 내 일부가 되기도 한다.


     제목을 '노르웨이 숲'에서 '상실의 시대'로 바꿨던 건, 문학사상사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난 여전히 하루키의 이 책을 하루키마니아로서 좋아하지마는 않는다. 하루키의 뛰어난 점이 이 책의 통속성으로 인해 묻혀지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다시 읽은 이 책의 번역상 문제도 왕왕 발견되고, 띄어쓰기 문제도 잘못된 점이 보였다.(내가 갖고 있는 건 99년 판본) 작년쯤 영화화된 이 책의 영화 버전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못내 아쉽고 또 그랬다. 내 상상 속의 모든 게 부숴진 듯한.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 상상속의 무기력했던 나오코가 좀 더 적극적인 여성으로 나와서 좋았다. 나는 누군가의 부재라는 거대한 우물 속에 빠져 있는 그녀가 못내 마음에 걸렸고,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마지막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전화건 것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그도 20대의 청춘을 종언하고 미도리라는 생기 넘치는 여성의 '삶'과 조우하고 스스로의 '삶'에 대해 열망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뭔가 자꾸만 잃어가고 있고 조금씩 초조해져만 간다. 일이 잘 안 풀리고 사람들 간의 관계가 엉킬 때마다 괴롭지만, 잃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이다. 받아들이고, 생은 계속된다는 명제를 입안에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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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5-01-1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중학교 때 한번 읽고 어른되서 읽으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우울하기만 했는데 나이들고 나서는 다 덤덤해지더라는... 경험이 사람을 꼭 성숙하게 만들지는 않더라고요. 힘든 건 더 안 좋아지기만..ㅠㅠ
그나저나 미도리는 같은 여자라도 넘 사랑스러워요.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묘사하는 부분도 넘 좋구요.^^

엘뤼에르 2015-01-16 10:54   좋아요 0 | URL
`봄날의 곰`이라는 표현이 참 좋더라고요.ㅎㅎ 최근 하루키의『여자 없는 남자들』도 재밌었는데, 뭔가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소설 제목대로 상실이 느껴지지만, 또 그 상실 속에서 치유받고 위로받는 것 같아서 좋아요:)
 
지하철을 탄 개미 - 김곰치 르포.산문집, 2011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 2012 부산시 원북원 후보도서
김곰치 지음 / 산지니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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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학보사의 학생기자 활동을 했었다. 취재활동도 좋았고, 동기들과 쌓는 추억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기자활동의 묘미는 잡지와 정기간행물을 공짜로 구독할 수 있다는데 있었다. 「한겨레21」이나, 지금은 폐간된 월간 「말」과 같은 잡지가 그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인권」지도 있었다. 행정기관에서 의례적으로 발행하는 기관지가 재밌으면 얼마나 재밌겠냐며 기대를 않고 펼쳤던 잡지에서 내가 모르던, 하지만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던 우리 이웃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많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성장하면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나는 아직도 스쳐 지나가는 이웃의 그림자를 보고 다정하게 말 한마디 건네며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지는 못하였다.

 

 장편소설 『빛』을 읽고 팬이 되어버린 김곰치 소설가의 르포·산문집인 『지하철을 탄 개미』는 사실, 『빛』에 비해 나의 애정을 받지 못한 책이다. 집중해서 책을 읽고자하면 이웃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내 자신과 다시 조우해야하는 고통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인권」지에 르포식의 인터뷰 기사를 싣게 된 글과 프레시안, 녹색평론과 같은 다른 매체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지하철을 탄 개미』는 엄연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소설처럼 읽힌다. 마치 김곰치 소설가의 소설이 현실처럼 재미나고 맛깔지게 읽히듯, 그가 바라본 현실도 소설과의 괴리가 없이 구성지고 맛깔나게, 그러나 진중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일본의 원폭 피해자였던 김형율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글이 없었더라면 이 책을 엮을 생각을 감히 꿈꾸지 않았을 거라는 김곰치 소설가의 말이 있지만, 모든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재밌고 귀하게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뒤르켐과 한나 아렌트를 탐독하는 시크한 탈북 청소년 박일의 이야기도 재밌었고(「시간에 지쳐 울지는 않겠다」), 노숙자 아저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가 담긴 「살아 있는 한, 희망의 본능은 꿈틀댄다」편도 웃고 울면서 읽었다. 노숙자 아저씨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은 무게의 삶을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로 겪어내고 있었던 아저씨의 일상을 읽어내며, 오늘 내가 길에서 마주한 그와 동년배쯤으로 보이는 남루한 모습의 사내무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의 삶과 인생이야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다가가기 힘든 그들의 말투와 행색으로 나는 은연중에 그 사람들과 나를 구별지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몹시도 부끄러웠다.

 

 김곰치 소설가의 글로 인한 나의 참회는 다른 책이 보여주는 ‘깨달음’의 수준에서 그치지않는다. 어떤 표현이 적합할지 잘 모르겠으나 ‘경이로움’, ‘놀라움’이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자주 놀라워한다. 도대체 저건 뭐냐며, 노랗기에 예쁘고, 너무 파랗고 아름다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비슷한 것 같다. ‘사람만이 희망’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을 바라보며 늘상 놀라워 할 수 있는 자세. 그것이 부끄럽지 않게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된다. 「인권」지에 기고한 그의 글이 인간의 권리를 설파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에 대한 놀라움과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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