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탄 개미 - 김곰치 르포.산문집, 2011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 2012 부산시 원북원 후보도서
김곰치 지음 / 산지니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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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학보사의 학생기자 활동을 했었다. 취재활동도 좋았고, 동기들과 쌓는 추억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기자활동의 묘미는 잡지와 정기간행물을 공짜로 구독할 수 있다는데 있었다. 「한겨레21」이나, 지금은 폐간된 월간 「말」과 같은 잡지가 그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인권」지도 있었다. 행정기관에서 의례적으로 발행하는 기관지가 재밌으면 얼마나 재밌겠냐며 기대를 않고 펼쳤던 잡지에서 내가 모르던, 하지만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던 우리 이웃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많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성장하면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나는 아직도 스쳐 지나가는 이웃의 그림자를 보고 다정하게 말 한마디 건네며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지는 못하였다.

 

 장편소설 『빛』을 읽고 팬이 되어버린 김곰치 소설가의 르포·산문집인 『지하철을 탄 개미』는 사실, 『빛』에 비해 나의 애정을 받지 못한 책이다. 집중해서 책을 읽고자하면 이웃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내 자신과 다시 조우해야하는 고통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인권」지에 르포식의 인터뷰 기사를 싣게 된 글과 프레시안, 녹색평론과 같은 다른 매체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지하철을 탄 개미』는 엄연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소설처럼 읽힌다. 마치 김곰치 소설가의 소설이 현실처럼 재미나고 맛깔지게 읽히듯, 그가 바라본 현실도 소설과의 괴리가 없이 구성지고 맛깔나게, 그러나 진중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일본의 원폭 피해자였던 김형율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글이 없었더라면 이 책을 엮을 생각을 감히 꿈꾸지 않았을 거라는 김곰치 소설가의 말이 있지만, 모든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재밌고 귀하게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뒤르켐과 한나 아렌트를 탐독하는 시크한 탈북 청소년 박일의 이야기도 재밌었고(「시간에 지쳐 울지는 않겠다」), 노숙자 아저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가 담긴 「살아 있는 한, 희망의 본능은 꿈틀댄다」편도 웃고 울면서 읽었다. 노숙자 아저씨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은 무게의 삶을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로 겪어내고 있었던 아저씨의 일상을 읽어내며, 오늘 내가 길에서 마주한 그와 동년배쯤으로 보이는 남루한 모습의 사내무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의 삶과 인생이야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다가가기 힘든 그들의 말투와 행색으로 나는 은연중에 그 사람들과 나를 구별지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몹시도 부끄러웠다.

 

 김곰치 소설가의 글로 인한 나의 참회는 다른 책이 보여주는 ‘깨달음’의 수준에서 그치지않는다. 어떤 표현이 적합할지 잘 모르겠으나 ‘경이로움’, ‘놀라움’이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자주 놀라워한다. 도대체 저건 뭐냐며, 노랗기에 예쁘고, 너무 파랗고 아름다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비슷한 것 같다. ‘사람만이 희망’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을 바라보며 늘상 놀라워 할 수 있는 자세. 그것이 부끄럽지 않게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된다. 「인권」지에 기고한 그의 글이 인간의 권리를 설파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에 대한 놀라움과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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