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즌 파이어 세트 - 전2권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1월
품절


밤새 눈이 내려 하얗게 덮인 세상은 마치 어제도 그제도 걸어다니던 그 곳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공기조차 신비하게 빛나는 것 같고, 어떤 신비한 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열다섯살 더스티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눈이 내리는 한밤중, 정체 모를 소년이 전화를 걸어 3년 전에 가출한 오빠의 이름을 대고, 오빠가 더스티를 부르던 별명으로 더스티를 부르고, 오빠가 마지막에 남긴 말까지 그대로 하지요. 미워할 수 없는 반항아 조쉬 오빠가 집을 나간 이후로 온통 삐걱이던 더스티의 삶은 그 전화와 함께 완전히 다른 궤도에 얹힌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을 향해 질주해갑니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듭니다. 사실 그 둘의 경계조차 분명치 않습니다. 더스티는 쓰라린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보이지만, 동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비현실적인 이 소년에 대해 집착하듯 매달립니다. 그렇게 소년에게 얽매여 있는 것은 더스티만이 아닙니다. 덩치 큰 남자들이 악의와 복수심에 차서 소년을 추적합니다. 소년을 본 적도 없는 사람까지도, 모두가 소년의 이야기를 합니다. 소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아무도 답을 모르지만, 모두가 소년을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거나, 집착합니다.

하얀 눈이 세상을 덮으면, 세상의 지저분한 구석들까지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하지만 보기 좋게 덮여 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눈과 같이 새하얀 소년을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주목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소년에게 쏟아내는 미움과 악의는 소년이 응당 받아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다른 괴로움이 전이된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 겹의 눈이, 정체 모를 소년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진정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정말 중요한 수수께끼는 오로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쓰라린 과정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것이겠지요.

무려 두 권짜리 책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부담없이 읽어갈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외국 소설이다보니까, 우리나라와 관습적으로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다른 문화를 만나는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주인공인 더스티와 가족들의 관계 등에서 한국적 정서로는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몰입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한정본만 상자에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보시면 상자의 그림과 각 권의 표지가 조금씩 다릅니다. 여러모로 생각해볼만한 부분이 많은 책입니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눈이 펑펑 내리는 밤이 온다면,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