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이청준 문학전집 연작소설 2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이청준의 <남도 사람>연작
-그 어떤 의뭉스러움

1.
이청준의 <남도 사람>은 연작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다섯 개의 변주라는 느낌이 든다. 한 인물이 어딘가를 찾아 오고, 그 곳에서 만난 또 다른 누군가와 술상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이야기. 이런 구조의 소설 다섯 편이 하나의 연작을 이루어 낸다. 그런데 그 두 인물 사이에서 술잔이 몇 순배씩 오고 가며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그렇게 의뭉스럽고 은근할 수가 없다.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이 원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어렴풋이도 아니고 꽤나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서 이럼 어떻고 또 저럼 어떻겠나, 하는 태도로 은근은근 어물쩍 어물쩍 흘려 넘기는 의뭉스러움이라니. 다섯 편의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다들 그런 식이지만 그 태도로부터 어쩐지 참 인간적이고 푸근한 온기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 친척들이 모인 할머니댁 아랫목에서 느꼈던 온기, 그런 종류의 온기가.
그러한 태도의 대화 중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서편제> 소릿재 주막 여인의,
“아마 그 여자 어렸을 때 소리 장단을 부축해 준 북채잡이 어린 오라비가 한 분 계셨더라는데, 제가 여태 그걸 말씀드리지 않고 있었던가요?”
하는 마지막 말이다. 이 건 아무래도 너무 심하다.

2.
그러고 보면 이청준은 <남도 사람>연작을 통해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공부를 위해, 취업을 위해 떠나 온 물리적 고향, 혹은 ‘모국어’라는 정신적 고향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자주 이야기되곤 하는 한(恨)이라는 것도 결국엔 ‘떠나 온 고향’, ‘고향 떠남’과 동의어가 아닐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헤메이는 일, 떠나 온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도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삶’이고 그대로 ‘한’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작가인 이청준 역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기 위해 고향을 떠나 아주 오랫동안 타지에서 헤메였다. 자전적 소설인 <눈길>에서, 눈길 위에 쭈그려 앉아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아 온 아들의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 보는 어머니의 한스러움은 그 아들의 한스러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연작의 중심 인물인 사내가 어째서 그토록이나 찾아 헤메던 누이를 만나고도 자신이 그녀의 오라비임을 밝히지 않고 다시 떠난 것인지, 처음 읽을 때엔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그 오라비의 태도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고향이란 언제나 그리워 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돌아갈 것임을 다짐하면서도 쉽사리 되돌아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눈먼 누이를 찾아 내고도 또다시 ‘누이를 찾는 길’을 떠나며 언젠가는 또 만날 것을 마음 속으로 기약하는 사내처럼, 어쩌다 한 번씩 찾아가 머물 수는 있어도 언제까지나 영영 자신을 매어 둘 수는 없는 곳이 바로 ‘떠나 온 고향’이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청준이 ‘소리’라는 매개체를 빌려 온 것 역시도, 많이 잊혀져 버린 정신적 고향이라는 의미로서 ‘소리’를 생각했음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보았다. 지금은 한참이나 떠나 온, 이미 벌써 멀어져 잊혀져 가는 언어적 고향의 모습이 ‘소리’에는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구비 전승’이라는 그 전승 형식이란 또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

3.
<남도 사람>연작을 읽고 나니 영화로 만들어진 그 것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서편제>든 <천년학>이든 지금껏 하나도 보지 않았었는데, 이번 외박에는 꼭 찾아서 한 번쯤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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