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로 간 코미디언 - 2007 제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2007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연수, 달로 간 코미디언
- 이해받지 못한 자의 슬픔

내가 ‘김연수’라는 이름을 처음 본 것은 분명 2004년도의 초겨울, 교양관 1층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읽었던 <2004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였을 테지만, 그 책에 실려 있던 열 편의 최종후보작들 가운데 ‘김연수’라는 작가의 <뿌눵숴(不能說)>란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떠올리게 된 것은 분명, 2005년 겨울 자취방에서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도중이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자취방의 침대에 엎드려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최종후보작들 중 ‘김연수’라는 작가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란 작품을 읽던 그날 밤, 나는 왠지 모르게 ‘김연수’라는 작가를 읽어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 가을, <2007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그와 만났다. 이번엔 ‘최종후보작’이 아닌 ‘수상작’으로서. 그리고 그저 ‘김연수’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작가가 아니라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읽어 온, 이젠 좋아하는 작가가 된 김연수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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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인터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9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인 그녀는 그 인터뷰에서 (정확하진 않지만)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행복한, 운 좋은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 글을 읽을 당시에 나는 그녀의 그 말을 그저 자신이 품고 있는 것에 형체를 부여하여 끄집어 낼 때의 쾌감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 나름대로 이해했다. 그러나 김연수의 <달로 간 코미디언>을 읽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나는, 루이스 부르주아가 했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김연수는 한 작품의 맺음말에서 ‘이젠 larvatus라는 이름의 수명은 다 한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었다(아니면 그의 블로그에서였던가?). 이제 더 이상은 ‘가면을 가리키며 걷는’자신을 가리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은 곧 그간 천착해오던 ‘진실과 허구’, ‘진짜와 가짜’의 세계로부터 나름의 답을 찾아 내었다는 의미이며 그와 동시에 자신을 붙들고 있던 ‘내 문학이란 과연 진짜인가’라는 물음 역시 극복해 내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 이후 김연수 문학의 행보는 한층 다양해지고 넓어졌다. 요컨대, 한 봉우리에 올라서서 세상의 수많은 다른 봉우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듯한 느낌이다.
이 작품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 김연수는 그런 시선에 닿은 하나의 봉우리인 ‘이해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198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은 한 권투선수, 그 선수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을 벌이다 링에서 죽은 한국인 권투선수의 고통이란 과연 무엇일까? 치열하게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 것? 링에 쓰러져 죽은 것? 그런 것들은 ‘고통’이라는 것의 범주와는 거리가 좀 먼 것들이다. 그 권투선수의 고통이란 14라운드라는 긴 시간을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합을 바라본 관객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만리 타향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결국 링에 쓰러져 죽은 그의 시합은 그 관객들에겐 단지 ‘다리가 늘씬한 무희들이 펼치는 카니발쇼와 조련사를 등에 태우고 모터보트처럼 물 위를 달리는 돌고래들처럼 잠시 머리를 식힐 때 유용한 여흥거리’에 불과했을 뿐이다. 관객들은 점점 악몽처럼 되어 가는 시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을 뿐 어느 누구도 남한에서 온 그 선수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이 고통스럽고 슬픈 이유는 결국 자신도 그런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통이 부재하는 세계란 침묵과 암흑의 세계이며, 침묵과 암흑의 세계에서 인간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이해와 소통 안에서야 비로소 존재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김연수는 책 말미의 수상 소감에서, 자신이 만약 작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자신은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꿔 말하자면 자신은 소설가가 되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김연수가 소설가이기 때문에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이야기하는 의미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이들로부터 이해받을 더 큰 기회를 가진 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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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품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여러 개의 서사가 동시에 진행되며 서로 엮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서사 방식을 들 수 있다.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에서는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와 조선족 아가씨를 동생과 결혼시키기 위해 중국으로 와 맞선을 보는 형제의 이야기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는 왕오천축국전이라는 텍스트와 연인이 자살한 뒤 그녀를 이해하려 그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소설로 쓴 한 청년의 이야기가 얽히며 하나의 주제로 치달아 간다.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도 그러한 서사 방식이 이용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198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죽은 권투 선수의 이야기, 소설가 청년과 한 라디오 피디의 연애와 이별 이야기, 그 라디오 피디가 오래 전에 가족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 버린 희극인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이야기라는 세 가지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며 얽힌다.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여러 가닥의 끈이 꼬이며 하나의 아름다운 줄을 만들을 만들어 내듯, 여러 이야기가 섬세한 구성에 따라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는 과정은 가히 아름답다고 할 만 하다.


+
<2007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 말하자면 왠지 올해의 <황순원 문학상…>은 좀 싱거운 느낌이다. 2004년부터 매 해 늦가을마다 읽어 온 <황순원 문학상…>은 매 번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재미있는 단편들로 가득했는데 이번만큼은 어쩐지 힘이 좀 빠진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적인 작품들도 물론 있었다.

먼저 권여선의 <반죽의 형상>. 권여선의 단편집을 읽었던 적이 있다. <반죽의 형상>도 거기서 한 번 읽어 보았던 작품. 권여선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자신의 욕망을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결코 숨기려 들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더럽고 축축하고 끈적이며 눅눅한 욕망일지라도 하나도 남김없이 자신 속으로 주워 삼키고 또 주워삼킨다. 작품의 종반부에서 욕망으로 가득 찬 주머니가 결국은 터져 버리지만,  권여선 작품의 매력은 욕망의 주머니가 터져 버려 엉망이 되어 버리고 만 상황을 결코 정리하려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박민규의 <깊>. 작품 목록에서 ‘깊’이라는 제목을 보고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참 생각했었다. 작품의 종반 즈음에서 무릎을 탁 치며 알게 된 ‘깊’의 의미란 결국 ‘딮’이었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읽어 보시라. 당신도 아마 무릎을 탁 칠 것이다.)
박민규는 우주적 인간이다. 그의 사고는 언제나 먼 우주를 향해 있다. 이 작품에서도 박민규는 우주를 향해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이번에 내딛은 우주로의 한 걸음에서 박민규가 얻은 깨달음은 결국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 해저 19251미터를 향해 하강하는 ‘룸’은 저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다프네’와 다를 바 없으며,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는 디퍼들이 다다른 곳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이었다.

<깊>은, 말하자면 SF랄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박민규가 그리는 SF란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무척이나 묘하다. 최소한 <깊>에는 카스테라로 변해 버린 세계라든가, 지구에 꽂혀 버린 거대한 탁구공 같은 건 등장하지 않으니까.

다음으로는 김애란의 <칼자국>. 나는 이 작품 이외에 그녀의 다른 작품들은 읽어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요즘 문단과 평론계에는 ‘김애란의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야단이라고 한다. 그만큼 김애란의 작품이 매력적이라는 말인가 보다.
<칼자국>도 한겨울 밤의 이불 속 아랫목처럼 따스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윤성희의 <이어달리기>. 이번 <황순원 문학상…>에서 <달로 간 코미디언>다음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었다. 어머니와 네 딸의 이야기인 <이어달리기>는 정말이지 최근 읽었던 그 어떤 이야기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경쾌한 리듬감으로 나를 빨아들였다. 이건 정말이지 심하다. 너무 재미있다. 윤성희씨, 그렇게 생기지는 않으셨는데 이렇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었다니요.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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