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평점 :
처음에는 정여립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기축사화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역사소설, 팩션을 떠올리면서 읽다가 갑자기 판타지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다소 당황스러움 속에서 400여년의 역사를 훑어가는 기묘하면서도 빠른 전개에 당황하던 중, 기독교에 기반하여 정여립의 죽음을 해석하는 저자의 물음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역사적 사건과 세계를 돌아다니는 홍도의 여정을 보면서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더불어 니체의 영원회귀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보았던 반복되는 인연에 천착할 즈음, ‘인연’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욕심 많은 작가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갑자기 폭발할 때 즈음, 수많은 우연성에 놀라기도 한다. 현대소설의 필수적 조건으로 자리잡은 개연성을 당연한 듯 무시하면서 능청스레 홍도의 우연적 만남들이 놓여지는 것은 마치 아침드라마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뒤에 놓여진 심사평에서 보듯이 ‘이러한 흠집들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필연적인 장치로 새롭게 다가왔다.’(p.390)
수없이 풀려나온 이야기들을 다소 급한 감은 있지만, 하나의 고리로 연결하고, 그 중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강조하는 것은 이 소설이 가진 하나의 매력임은 분명하다. 때로는 그 메시지들이 너무도 명확하여 교술적인 측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중적인 작품임은 분명하다.
정여립과 기축사화, 영원성과 보편성
“천하비일인지천하 내천하지천하야, 천하는 임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 모든 사람의 천하라고 했습니다. 임금이란 자리는 자자손손 핏줄로 이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요순시대처럼 천하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뽑는 자리라고 했죠. 한마디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겁니다. 미친 거죠. 조선 시대였거든요. 상놈이고 양반이고 더구나 임금까지 다 똑같은 인간이라고 떠들어댔으니, 간악무도한 대역 죄인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정여립을 아십니까?”(p.17)
이 소설의 저자가 정여립에게 느낀 매력을 그대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는 또한 홍도가 자치기를 만나고, 정주옹주를 만나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사랑을 하고 인연을 만들어가는 기반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여립이 가진 혁명적 사상은 조선시대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홍도와 자치기가 서로의 신분과 관계 없이 사랑을 이루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되고, 홍도가 정주옹주를 밟고 자신의 ‘생존’을 취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나아가 홍도가 영원한 삶을 얻는 과정에서 ‘항아님’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넘은 유일한 인물이 홍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여립의 ‘대동계’를 다시 건설하고자 만들어진 산속 마을 사람들도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지만, ‘항아님’을 배척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완전히 정여립의 사랑을 이어받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자치기’ 또한 두 다리를 잃었음에도 또다른 약자를 배척하지 않던가. 정여립이 사상이라면, 그것이 육화된 실체는 홍도인 것이다. 정여립이 자신의 삶을 버리면서 백성들의 온전한 삶을 얻고자 하였다면, 그것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홍도의 삶이다. 그런 점에서 홍도가 천주학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정여립과 예수를 연결하면서, 사실 정여립이 홍도의 몸을 통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 그것은 영원한 사랑.
홍도는 400여년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조선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는 마치 황석영의 ‘바리데기’와 유사하다. 새로운 세상에서 역사를 만나지만, 그 역사보다는 그 역사를 관통하는 ‘사람’들의 만남. 그들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갈등과 치유,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그 어떤 소재를 바탕으로 썼다 하더라도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사랑 이야기다. 전쟁을 비롯한 역사의 소용돌이는 물론이고, 종교, 신분의 차별, 국가, 인종, 성별이라는 것들은 사랑 앞에서는 초라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동현’은 젊은 날 사랑에 속은 아픔을 가지고 있고, 서로를 속이면서 ‘절실함’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노인의 사랑 이야기를 회상한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절실함’이 있으면 서로를 속이는 사랑이라 하더라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인물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동현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음을 이야기한다. ‘절실함’은 사랑의 기본적인 요소다. 하지만 ‘서로를 속이는 사랑’이라는 것은 홍도와 동현(자치기) 사이에서 필요치 않다. 결국 사랑의 완성은 서로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자신의 ‘절실함’의 끈을 인정할 때에 완성됨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