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현수막을 보니 10여년 전 집주인과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회사근처 발품팔아 자취방을 알아보다 지칠 무렵, 마지막으로 가본 집이 딱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 아들이 신혼집으로 사용하던 집이라 그런지 집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특히 마감재 하나하나 고급스러웠다. 실크벽지에 나무마루바닥,한샘 붙박이장&싱크대, 나무재질 블라인드에 간접조명 등.. 게다가 귀한 전세!
몇천을 더 불러도 될 집이었지만 집주인이 시의원인데 다음 해 있을 선거자금이 필요한지 빨리 계약을 원했고, 집은 너무 맘에 드는데 가격이 부담된다며 500만원 깍아달라니 선듯 깍아주었다.
또한 집주인의 부인은 내가 김치도 담으면 나눠주고, 공과금도 자기가 관리하며 내주겠다며 선심을 보여왔다. 으잉? 내가 쓴 세금을 왜 내주겠다는거지? 의아했지만 계약 당시엔 그냥 하는 말인줄 알았다.
살면서 공과금 영수증이 안날라 오길래 주인집에 찾아가 영수증을 달라니까 걱정말라며 고지서를 안주기를 몇년, 그 와중에도 몇번을 찾아갔고, 내가 쓴 건 내가 내겠다며 사양했지만 웃으며 고지서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집과 합치게 돼 사촌동생에게 그 집을 물려주며 명의변경을 하는데 왠걸.. 몇년치 공과금을 안내서 과태료까지 폭탄으로 맞아 안내도 될 벌금까지 몇십만원 물어준 적이 있다. 왜 그 때 집주인은 고지서를 안줬을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다.
살면서 알게 된 집주인의 평판은 가히 내가 이 집에 살아도 되나 싶을만큼이었다. 봉천고개 쪽 푸****아파트 재개발로 철거싸움이 한창일 때 시의원이자 푸****아파트 조합장이었는데 용역깡패를 투입해 살인사건도 나고, 그 아파트 완공 후 조합장에게 아파트도 선물로 안겨줘 내가 그집으로 이사갈 무렵 동시에 집주인은 원래 살던 집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 아파트로 이사를 갔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집이 마감재가 좋았던 이유는 가구업을 한다는 아들 덕분이라는데, 조합장이던 집주인이 아들에게 가구업을 하도록 하고 거의 재개발 아파트 싱크대 및 바닥재, 마감재를 그 아들이 독점하다시피 도맡고 있었기 때문이란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오늘 현수막을 통해 오랜만에 옛 집주인 얼굴을 보게 되었다. 벌써 20년쯤 해먹었다면 몇 선인걸까. 저런 사람이 아직도 버젓히 현수막을 달고 있는 거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난 시장선거보다도 지역구 선거가 더 소중하다고 보는 편인데 정말이지 이번엔 뽑아주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 또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