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촛불잡이 > 의사파업의 윤리성
의료윤리학 - 2판
한국의료윤리교육학회 엮음 / 계축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의사파업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나는 의사파업 와중에 의사파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일관된 윤리적 잣대에 때로는 염증을 느꼈지만 여전히 내 가슴 한 구석에는 의사파업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윤리적 죄책감이 남아 있다. 이제는 객관적으로 의사파업을 윤리적 시험대에 올릴 필요성을 느낀다.

의료윤리는 크게 네 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자율성 존중 원칙, 악행금지 원칙, 선행원칙, 정의 원칙 등이 그것이다. 그 중 악행금지 원칙과 선행원칙은 가장 고전적인 윤리원칙이다. 의사파업이 결코 선행이라고 보기 어렵기에 의사파업의 윤리적 평가의 핵심은 과연 의사파업이 윤리적으로 악행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악행금지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여기에서는 의무론적 윤리체계에서 널리 쓰이는 '이중효과원리'를 사용해 분석하고자 한다. 이중효과원리의 네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고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때 그 행위는 윤리적으로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1. 행위의 본래적 성질(intrinsic quality of the act) : 행위 자체가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행위이어야 한다.
2. 의도(intension) : 행위자의 의도가 나쁜 결과에 있지 않고 좋은 결과에 있어야 한다.
3. 인과성(causality) : 좋은 결과는 나쁜 결과의 수단이 되어 얻어져서는 안 된다.
4. 균형성(proportionality) :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는 그 중요성에서 균형이 잡혀야 한다.

의사파업을 윤리적으로 정당화시킨다면 그 핵심논리는 현재의 해악보다 잘못된 제도로 인한 해악이 더 중대하다면 현재의 해악을 담보하면서라도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는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주장이 의사들의 진심이라고 가정할 때 의사파업은 이중효과원리의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첫째로 의사파업의 본래적 성질은 선한 행위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행위로 보기 어렵다. 둘째로 행위자의 의도가 좋은 결과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충족될 수 있다. 셋째 좋은 결과는 나쁜 결과의 수단이 되어 얻어져서는 안 된다는, 다시 말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조건은 충족시키기 어렵다. 넷째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는 그 중요성에서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다.

결과적으로 의사파업은 이중효과원리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의사파업의 윤리적 정당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의사들이 진심으로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삼고 제도개혁을 위해 의사파업에 동참했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순수한 의사는 실제로 소수에 불과하다.

의사파업을 단순히 윤리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오히려 의사파업은 사회 구조적인 관점으로 분석할 때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기가 더 쉽다. 그럼에도 윤리적 관점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의사파업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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