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나영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주의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끝까지 읽어라.

 

화면에서 나영석PD를 본다. 언제부턴가 강호동과 이승기보다 그의 넉넉한 눈웃음을 보게 된다. 나만 그런가? 느끼하다면 미안하지만, 사실이며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어차피 레이쓰는 길다>, 나영석 저.

 1박 2일로 국민 연출가로 이름을 날린 나영석의 자전적 에세이.

 

그의 상황을 보면 '어차피 레이쓰는 길다'라는 제목은 도전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표현으로 보인다. '어차피 길다. 할 거 많잖아. 나 나영석이야!' 또는 '어차피 길잖아요. 할 수 있는 거 많습니다. 기죽지 맙시다. 동지 여러분'. 이 둘 중 하나의 뜻이다. 본인은 후자를 주장.

 

 <어차피 레이쓰는 길다>는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 이야기과 그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들려 준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아주 조금) 지루한 감이 있다. 그러나 본인도 간파하고 있는지 좀 지루하다 싶으면 1박 2일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짝 깔아 주며 명 PD답게 시청률(?)을 유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와 함께 책장을 덮고 있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미리 하자면 KBS에서 1박 2일을 연출하며 시청률 50%, 즉 PD로서 소위 난다 긴다의 날고 긴 사람이다. 그러다 파업과 함께 조용하고 시끄럽게 하차, tvN으로 이적하여 꽃보다 시리즈와 신서유기로 '회사는 소속일 뿐, 나는 나영석이다!'를 보여주듯 가뿐하게 후속편까지 성공시킨다. 취업난이 극악에 달한 현 시점에서 글쓰기와 예능을 사랑하는 모든 언론 관련 준비생들의 경쟁률을 더욱 높여준 장본인이다.

 

 강연을 직접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이 사람이 얼마나 글을 재미있게 잘 쓰는지 새삼 깨달았다. 강연은 참 재미가 없었다. 목소리도 굵은 중저음에 딱히 웃긴 뉘앙스는 전혀 풍기지 않고 시종일관 진지하게 말한다. (그날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반면에 책은 하나의 이야기 꾸러미를 예쁘고 아주 재밌게 포장한 느낌이 물씬 난다. '오로라'를 찾아 떠나는 나영석 만의 결승점에는 그가 PD가 되기까지의 과정, PD로 시작한 뒤의 고민과 일에 대한 가치관, 1박 2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들이 세련되고 유쾌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보통 자기 얘기하는 책들의 특징인 '잘못 덮기 신공' 따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주 담백하게 나영석의 생각을 리얼 버라이어틱하게 말해 준다. 책의 끝머리는 나영석의 여정과 앞으로의 알 수 없는 목표까지 오로라 안에 집어 던지며 멋지게 엔딩씬을 마무리 한다. 

 

 이런, 너무 칭찬만 했나? 흠이 있다면 책 표지가 하늘색이라 가벼워 보인다. 난 딱딱한 초록색이나 하얀색이 좋거든. 수학의 정석 같은 뭔가 강력하게 딱딱한 네모 박스 같은 것들. 그리고 재밌어서 너무 빨리 읽힌다. 돈 주고 산책은 헐거워지도록 쓰고 닳게 해야 제 맛인데. 물론 다 돈 주고 산다

 솔직히, 나영석의 다음 연출작보다 다음 책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 허, 또 칭찬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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