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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처럼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책을 읽으며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떤 장면이냐고? 그 왜 빌리가 트랄팔마도어 행성 동물원에서 어떤 여배우와 이렇게 저렇 게 만나는 장면있잖아. 난 그 배우를 알지 못하니까 내가 아는 배우들을 떠올렸지. 왜 꼭 떠올려야 하냐고 묻지마. 그냥 소설을 좀 더 즐기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막 어떤 여배우의 이미지를 삭 하고 심으려고 하는데 깜빡 잠이 들었나봐. 아니, 잠 속이 아닐 수도 있어.
어두운 공간 저 너머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난 어둠 속에서 그 소리를 따라 걸었지. 곧 부엉이의 뒷모습이 보였어. 내가 이봐 부엉이 하고 부르니 몸은 가만히 있고 부엉이의 목이 회전을 하더군. 그 큰 두눈이 나를 향해 부라리고 있었어.
"아, 깜짝이야."
부엉이는 나를 보며 계속 부엉 부엉 거리는데 꼭 말을 거는거 같았어. 내가 어깨를 으쓱 거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니 부엉이가 작은 물고기를 내게 건네주더군. 혹시 하고 그 물고기를 귀에다가 집어넣으니 역시나 우린 서로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었어. 내가 물어보았지.
"여긴 혹시 보고인의 우주선이오? 만약 그렇다면 난 보고인들의 시를 찬양할 준비를 해야겠네. 아니면 헵타포드인의 우주선인가? 난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지난 몇 달간 돼지 멱따는 소리를 연구해 왔소. 물론, 붓글씨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 하긴 이 물고기 덕분에 그럴 필요도 없어졌군."
" 여긴 트랄팔마도어 우주선이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이 우주선에 타게 됐지?" "
"난 그저 엄지를 세웠을 뿐이지. "
"히치하이커로구먼. 자네 그러면 잘못탔네. 우리는 지금 지구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중이니까"
"아니 왜 지구로 향하는거지? 트랄팔마도어 인들이 지구를 침략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원래는 지난 오 월 부터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었고 나는 거기서 내릴 예정이었지만 막 도착할 즈음 지구에서 다시 한 명을 더 태우고 가야한다고 하더군. 트랄팔마도어 인들이 말하길 이미 자신들의 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 라고 하더군."
"그럼 당신은 어떻게 탔소?"
"난 그저 바위 위에 앉아 있다가 쥐를 잡기 위해 퍼드득하고 날아 올랐을 뿐이오. 헌데 긴 밤을 지새우느라 아침이 오는지도 몰랐던거요. 시계가 없었거든. 이거 원 참.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더구먼. 아무튼 그래서 그냥 그대로 그렇게 가는거지."
"저런, 저런. 그런데 안드로메다에는 왜 가는 거요. 그곳이 어떤 곳 이길래."
"한마디로 개념충만한 곳 이지."
"그렇군. 개념충만한 곳 이라. 아 그런데 너무 심심하구먼. 거기 자네가 들고 있는 책은 무엇인가."
"이 책은 킬고어 트라우트가 쓴 <<외계에서 온 복음서>>요. 한 번 읽어보시게나. 이제 곧 지구에 도착하니."
나는 부엉이가 건네 준 책을 펼쳤다.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하라.'
그렇게 가는 거지.
그리고는 우주선은 지구에 도착 했다. 난 아직 지구에 남기로했다. 그때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부딪쳤다. 이게 뭐지? 투명인간 인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때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내 육신은 이미 불에 타 없어졌고 이렇게 내 정신만 남아 있는것이네."
그렇게 가는거지.
부엉이에 투명인간에 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난 우주선에서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저기 그러면 우리 지구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되겠는가?"
"끔찍한 시간은 외면해 버리고 좋은 시간에 관심을 집중하시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읍시다. 내 모습이 지금 어떤거 같소. 때깔이 이만하면 곱지않소? 나도 이만하면 안드로메다에 갈만 하지 않겠소이까?"
"당신은 흔들이구먼. 흔들이."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우주선 문이 닫히는 순간 반짝이는 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말그대로 흔들이었다.
"이런, x 같은 경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