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경복궁 - 경복궁에 푹 빠진 사람의 시선
박찬희 지음, 이의렬.이가명 사진 / 빨간소금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씨는 따뜻한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 완연한 봄을 맞지 못했다. 내란 사태와 생계 해결을 찾는 과정에서 헤매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부산과 창원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한국사 2곳, 통합사회 1곳). 마른 사막과 같은 시간을 지내면서 잠시 일상을 잊을 수 있게 도와준 책을 이제야 소개하는 글을 남긴다.

박찬희 소장님이 쓴 <유혹하는 경복궁-경복궁에 푹 빠진 사람의 시선>.

이 책은 코로나 이후 경복궁을 수없이 드나든 저자가 온전히 경복궁 자체에 집중하며 느낀 감동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은 동기에서 출발했다.

책에는 경복궁을 샅샅이 살펴 본 저자만의 감상법이 잘 녹아져 있다. 책의 군데군데 스며있는 저자만의 안내를 소개해보자면

"근정전과 마당을 입체적으로 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보통은 근정문 가운데서 보는데, 그 밖에도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근정문을 지나면 좌우로 가지 않고 근정전 쪽으로 쭉 걸어갑니다.

그러나 경복궁을 좀 아는 사람들은 먼저 동남쪽, 그러니까 오른쪽 모서리로 갑니다. (중략) 그곳에서 근정전을 중심으로 인왕산과 북악산이 늘어선 모습이 아름답고 실감 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서남쪽에서는 어떤 풍경이 보일까요? 그곳에서는 산 대신 넓은 하늘이 펼쳐지며 다른 느낌의 근정전이 보입니다. (중략) 마지막은 근정문에서 시작해 육상 선수가 트랙을 돌 듯 행각을 따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도는 방법입니다(67~68쪽). "

"교태전 영역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곳인 것처럼 풍경이 달라집니다. 교태전 마루 앞에서 보면 왕비의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거고, 마당에서 보면 궁녀의 시점으로 올려다보는 겁니다. 교태전에 간다면 왕비의 시점과 궁녀의 시점이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보기 바랍니다(106쪽)."

"이제 교태전 최고의 풍경을 찾아볼까요? 교태전 뒤로 아미산이라는 잘 가꾼 동산이 펼쳐져 있습니다. 교태전 마루에 있는 세 개의 문으로 아미산이 액자 속 그림처럼 쑥 들어옵니다. 아미산은 계절에 따라 바뀌므로 액자 그림도 바뀝니다. 특히 꽃이 피는 봄에는 그 풍경에 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빌려온다’라는 뜻에서 ‘차경(借景)’이라고 부릅니다. 문으로 안과 밖을 연결하는 겁니다(106~108쪽)."

방학이나 조금 여유 있게 서울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지면, 이 책을 교과서 삼아 경복궁을 찾을 생각이다. 가족여행이 될 공산이 큰데, 다행히 아이들과 함께 경복궁을 지루하지 않게 탐험할 수 있는 팁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근정전은 넓은 월대가 받치고 있습니다. 월대가 얼마나 큰지 넓은 마당과 월대를 한 바퀴 두른 길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근정전의 위상에 걸맞게 월대 곳곳을 동물로 장식했습니다(77쪽). "

아이들과 근정전 월대 곳곳에 있는 동물들을 찾으며 놀이처럼 둘러본다면 아이들에게도 경복궁은 그저 따분한 곳이 아니라 재미있고 신기한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제안하는 경복궁을 손쉽게 보는 방법 가운데 마지막은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 상상력이 가장 잘 살아있는 대목은 다음의 문장이었다.

" 경복궁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동궁과 자경전 사이에 있는 소주방과 생과방 골목이 제격입니다. (중략) 코끝으로 고소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깁니다. 아궁이에서 타는 구수한 나무 냄새가 섞여 있습니다. 냄새 뒤로 소리가 딸려 옵니다. “빨리 해”라고 재촉하는 소리가 들리고 “휴”라는 가벼운 한숨 소리도 들립니다. 재료를 “탁탁” 다듬는 소리, “보글보글” 음식 끓는 소리도 빠지지 않죠. 골목길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걸음 소리 또한 놓칠 수 없습니다. 우물에서는 “쫘르륵” 물 긷는 소리와 함께 궁녀들의 푸념이 들립니다(205쪽)."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사는 부산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현장을 자주 찾고,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나 자신의 동기 부여를 위해 이렇게 글로 남긴다(서평단의 소중한 기회를 주셨는데, 2주의 기한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빨간소금 임중혁 대표님).






만약, 갈 때마다 다른 감동을 얻고 돌아설 때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이 명작이라면 경복궁은 단연 명작입니다. (중략) 경복궁을 다시 가는 까닭은 갈 때마다 다른 경복궁을 만나기 때문이며, 그 순간이 지나면 같은 경복궁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1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