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미술관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상을 그린 것도 아니며, 유명 미술관 혹은 그곳의 유명 작품들을 분석하고 있지 않다. "예술품을 쓸어 모은 한량들", "엘긴 마블, 약탈로 꾸민 박물관의 권위" ... 미술관을 둘러싼 흥미진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포진해 있으니, 미술관 혹은 미술작품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목적은 무엇일까? 무엇을 발가벗긴다는 것인가?


 이 책은 미술관이 감추고 있는 어떤 비밀스러운 면모, 어쩌면 추악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만한 바로 그 과거를 발가벗긴다. 그 첫 발걸음은 1장 "고전의 부정"이다. 우리가 미술관 혹은 미술작품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들은 고전적인 면모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엄숙한 분위기 혹은 어떤 본질을 탐구하고자 한 시도와 같은 것들이 그에 해당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고전성이 허구적이라고 말한다. 소위 "순수예술"에 대한 열망으로 혹은 "예술"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리스적인 것, 이른바 고전성이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령 알록달록한 인간의 피부가 아닌 순백의 피부나 "인간"의 본질 자체를 표현했다는 매끈한 표면은 색칠된 것이 떨어져 나간 것의 결과이고 17세기에 빙켈만을 필두로 확산된 고전주의의 핵심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고전적인 작품들이 가지고 표현하고 있다는 "순수성"은 그야말로 한 세대의 고안물로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아니 그들이 예찬한 것보다 훨씬 혹은 어쩌면 전혀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고전성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순수성이 하나의 가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모아둔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 후자에 먼저 답을 하자면, 미술관은 16세기에서부터 여러 박물관들이 미술작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탄생한 개념으로 "미술"과 "작품"을 동시에 충족하는 어떤 이념을 숭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 그림과 저 그림을 구분 짓고 어떤 하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가 본격적으로 출연한 것과 관계가 있는데, 말하자면 세계 곳곳의 문화재에 가치를 부여하거나 그곳의 가치를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약탈을 한 우월성과 관계한다. 침략당할 만해서 침략 당하는 것이고 더 나은 사회, 정확히 말해서 '서구적인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서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된다는 논리로부터 말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이러한 논리로 말미암아 비서구적인 대상의 표면에 그들의 "아름다움"과 "고상함"을 덧칠하는 작업이 자행되는 공간이자 그들의 우월함, 가령 원근법과 같은 기초적인 수리과학이 반영되지 못한 비서구적 대상을 향해 날리는 조소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공간인 셈이다.


 ​여기서 고전성, 그러니까 가장 서구적인 것으로서의 그리스적인 것이 강력한 규준이 된다. 새하얗지 않은 피부색과 아름다움의 준거와 거리가 먼 얼굴형 그리고 해부학에 근거하지 않은 사고들, 모든 비서구적인 것들은 그들의 순수성을 드높여주게 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비서구적 대상을 통해 "아름다움"과 "고상함"의 의미를 되뇌이면서 서구성을 재생산하고 반복한다. 따라서 고전성이 하나의 가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예술에서의 하나의 경향을 폭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뿌리, 서구 사상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순수성의 열망이 허구적인 것임을 폭로하는 것이자 그로 말미암은 행위들의 정당성조차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고전이 없다는 것은 그리하여 단순히 고전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사상적 뿌리가 되는 그리스 그리고 자신들의 근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서구인들의 사상적 회귀본능을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 요컨대 드높은 위엄과 고결함을 내보이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위태로운 사상을 근간으로 구축된 공간이 것인 만큼 적극적으로 발가벗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팬데믹으로 인해 거리 두기가 만연하면서 미술관과 박물관의 공간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현실이다. 물론 현실적인 요건으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무거움을 덜어내는 중이겠으나, 이러한 거리 두기로 인해 외형에서 독해되는 공간성에 대해 숙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실로 고무적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미술관을 마냥 발가벗길 대상으로서, 그러니까 어떤 추악한 비밀을 감추고 있는 공간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미술관 혹은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탄생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들이 주목하고 보존하고 나누고자 하는 어떤 이념 역시도 구성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도 강조하고 있다. 작년 초,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뒤바꾸면서 수많은 개념들이 수정되고 변화를 겪은 것과 같이 "인간성"을 고찰하는 것에 있어 이들의 임무 역시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떤 예술작품을 본격적으로 논하거나 특정 시대상을 분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관통하고 있는 어떤 "아름다움"이나 "순수함" 혹은 "본질"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우리를 거리 두게끔 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