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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 이 시대 2인 가족의 명랑한 풍속화
박산호 지음 / 지와인 / 2020년 12월
평점 :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는 스릴러 소설 전문 번역가인 저자가 딸 릴리와 함께 명랑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가끔 등장하는 고양이 송이도 아주 사랑스럽다.
나 역시 비록 출판번역가는 아니지만 번역을 하면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번역으로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 일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나도 10년 정도 더 번역을 하면 저자와 같이 "중견" 번역가로서의 입지를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가 자주 생각났다. 아무래도 엄마인 저자가 딸 이야기를 하곤 할 때마다, 우리 엄마는 어땠더라, 하고 기억을 되새겨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책 41-43쪽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저자의 딸 릴리는 고3 학생으로, 벌써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고 불어도 배워 보고 싶다는 소망을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부러움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 저자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 엄마가 겹쳐 보였다. 어렸을 적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 진학을 1년 미루고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던 엄마는 영어 교사라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영어를 배우면서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발음이 좋다고 칭찬을 듬뿍 들어서였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해야 했고, 회사에서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해서 나를 낳았다.
나는 대학원을 들어가면서 영어 전공을 했는데,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모습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내가 엄마의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어색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런 감정이 드문 것은 아니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된다.

위의 사진에 나오는 대목은 릴리와 저자의 즐겁고 여유로운 일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릴리의 학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 아찔해지는 순간도 있다곤 하지만, 토요일만은 이렇게 둘만의 브런치를 (주로 마라탕을!) 즐기는 모녀의 모습이 흐뭇하다.
이제 일곱 살이 된 고양이 송이의 모습도 군데군데 묘사되어 있는데, 그것 또한 기분이 좋아진다. 두 모녀가 싸울 때 그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보여 준 송이의 행동이 묘사된 대목에서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라는 가족에세이를 손에 들면, 편안하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편의점 음식을 야식으로 즐기는 릴리와 그런 릴리를 바라보며 잔소리를 꾹 참아내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의 그런 장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