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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돌봅니다 (반양장) - 십 대를 위한 자기 자비 연습
박진영 지음 / 우리학교 / 2019년 8월
평점 :
이 책은 연하다. 표지의 해먹에 쓰인 초록처럼 연하다. "자기 자비"라는 다소 낯선 개념을 십대들에게 소개하고 십대들이 "자기 자비"를 실천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저자는 강한 말투나 자극적인 예시를 사용하지 않고 소화하기 쉬운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을 낸 출판사 우리학교의 저서 목록을 보니 저자(박진영)가 쓴 또 다른 청소년을 위한 심리학서가 있었는데 그 책 역시 십대들의 필요와 경험치를 잘 고려하여 쓰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후반인 나도 <나는 나를 돌봅니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음은 내가 도움을 받은 대목들이다.
완벽주의적인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성격 특성 중 신경증(부정적 정서성, 과한 걱정 및 불안과 관련된 특성)이 높아지고 성실성(체계성, 책임감, 의지력 등과 관련을 보이는 특성)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p109.
이 대목은 완전 나였다. 전에도 다른 글들을 읽으며 내게 완벽주의자 같은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는데, 이렇게 내가 빼박 완벽주의자라는 걸 알려주는 글은 처음 읽었다. 완벽주의자에 대한 명료하고 자세한 묘사가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발견하게 도와줬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완벽주의자로 살고 싶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지지? 그리고 나서 내가 놀랐던 건, 스스로 질문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문제는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완벽주의자이기를 그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저기에 열거된 완벽주의자의 부정적 특성들을 하나하나, 주의를 기울여 타파해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했다. 가령 체계성의 영역. 나는 언제부턴가 "계획을 완벽히 지킬 수 없다"는 이유로 삶을 무계획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실은 항상 100을 달성하려는 강박이 문제였다. 그냥 편안히 계획을 세우고, 다 실행하지 못하면 그런 채로 넘어가고, 다음에는 좀 더 잘해 보려고 노력해 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당장 스케줄러를 만들었다. <나는 나를 돌봅니다>라고 내가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내가 스케줄러를 다시 쓰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비"와 더불어!
자신에게 엄격하고 스스로의 의사를 잘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목표 달성 자체보다 '실패하지 않는 것', 즉 못하는 것을 막는데 더 많은 초점을 두는 편입니다. 잘하고 싶다기보다 '못하지 싫다'는 게 주된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p115
이것도 내 얘기. 아까 체계성과 관련한 나의 여태까지의 태도가 그랬다. 조금씩 발전하는데 의의를 두기보다는 "완벽"을 설정하고 그걸 달성하지 못하는 게 싫어서 문제 자체를 회피해 버리는 태도. 그리고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번역을 하는데 있어서도, (첨 번역을 배울 때는 그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느샌가 "못하는 게 싫다"는 게 익숙한 마음 속 목소리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 부분도 고쳐갈 생각이다. 어린아이들이 넘어지는 게 두려워 걸음마를 회피하지 않듯이, 나도 초심을 되찾아 "잘하고 싶어!"라는 의욕과 더불어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고 싶어졌다.
실제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걸 거야.'라고 여기는 등 삐딱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도와준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행복해지는 등의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는 것의 효과는 주는 사람의 일방통행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 역시 이를 알아채고 고마워할 때 완성된다는 것이지요. p72
이 대목에서도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얼마 전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랑 만나서 수다를 떨고 나오는 길에 언니가 말했다. "네가 있어서 난 참 좋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그 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하고 생각했다. 나의 마음에 생기를 주고 우리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할 수 있었던 그 말은 그렇게 버려졌다. 아마 내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혹독한 계절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라도 그럴 수 있다면 언니의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가 깊어지고 행복해지는" 길을 내가 걷게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인용할 구절은 사진으로 첨부한다.

'눈치 보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부정적인 시각을 변화시켜 준 대목. 이 대목을 읽고 새롭게 해석하게 된 나의 경험이 있다. 나는 번역일을 하며 에이전시 담당자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는데, 최근 한 담당자에게 어떤 부탁을 하는 이메일을 보냈었다. 그런데 답장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이메일에서 사용한 나의 말투와 표현들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담당자를 기분 나쁘게 한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다른 단어를 쓸 걸, 좀 더 조심스럽게 말할 걸, 하는 후회가 됐다. 한데 알고 보니, 내 폰의 새 이메일 자동알림 기능에 이상이 있었던 것이었다. 답장은 일찌감치 도착해 있었다. 이 경험이 정확히 '눈치 보기'의 경험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심리를 끊임없이 염려한다는 점에서는 눈치랑 비슷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난 담당자가 화가 난 것은 아닌지 마음을 쓰면서 난 왜 이렇게 소심할까, 하고 이중으로 나 자신을 괴롭혔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생각해 보니, 나는 그 담당자를 평상시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이메일에 묻어나는 인격과 성격을 통해) 상당히 좋아했고, 원만한 업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걸 깨달았다. 그 관계가 나에게 소중했기 때문에 조바심도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애를 태웠던 것이 꼭 소심함의 소치였다기보다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다름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책의 주제로 돌아오기 위해 '친구 관계'를 생각해 본다. 친구 관계라는 건 서로 자비로운 관계가 아닐까? 내게 무슨 잘못을 해도 용서해 주고 싶고, 서로 어딘가 부족해도 그 자체로 사랑스런 그런 관계. 그렇기에 저자가 Intro에서 던진 "내가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를 자비롭게 대하면 됩니다."일 것 같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나는 나를 돌봅니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내가 나의 베프가 된다면, 나는 날마다 재밌고 신이 날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이 책을 곁에 두고 때때로 다시 참조하며 "자기 자비"를 수행하는 법을 나날이 더 잘 터득해 가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