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로맨스에서 돌보는 마음까지,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ㅣ 앳(at) 시리즈 3
신성아 지음 / 마티 / 2023년 12월
평점 :
심뇌혈관 질환, 치매, 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치명적인 병이다.
게다가 암은 내가 겪어본 사람 중에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엄마를 가장 무력하게 만들고 끝내 숨을 거두게 한 질병이라 그런지 두렵고 무서운 병이다.
어른에게도 고통스러운 암인데 하물며 어린 아이에겐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 그리고 그 고통을 대신 겪을 수 없어 매일 피눈물을 쏟을 환아의 부모는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견뎌내야 할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이가 백혈병으로 투병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훌륭한 글을 써내려 간 작가의 의지와 노력이 존경스럽다. 순간마다 무력함을 느껴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긴 시간을 버텨내고 때로는 투쟁했을 과정이 선하다.
아픈 아이들을 위한 공교육 체계의 부족함을 꼬집는 내용은 공감가면서도 교육부에서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 당장 현장에선 뾰족한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가족은 하나의 단일 세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껏고정된 집단 정체성을 부여받으면서 가장 순수하고 무결한탈정치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사실 이곳이야말로 가장정치적인 곳이어야 한다. 부부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기대했던 것과 달리, 영아가 자신과 양육자를 한몸이라 여기는것과 달리 가족은 서로 너무 다른데,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오랜 시간 함께 존재해야(be with)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해 당사자 간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합의의 여지를 찾고협력을 모색함으로써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도모하는 데정치의 역할이 있다면 이보다 정치가 더 필요한 공간도 없다. 어차피 발생할 싸움과 갈등이라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가정 내정치의 목적이 될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이구성원들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그 결정은 반드시 정치적이어야 한다. 윤이의 돌봄 문제는 가장정치적인 의제였어야 했다. - P111
아이가 병원에 오래 입원한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할까.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이런 걱정까지 미리 하며 준비해두는 엄마는 없다. 언제 발발할지 모를 전쟁에 대비해 약간의 금과 달러까지 집에 챙겨두는 나조차 이런 경우는 상상하지 못했다. 수전 손택의 유명한 비유처럼 우리 모두는 건강의 왕국과 질병 왕국의 이중국적자다. 하지만 질병의 왕국으로 이주할 때 필요한 준비물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 P19
‘희망‘(hope)이란 단어가 천년 전 영어에 처음 등장했을때는 지금과 달리 소망뿐 아니라 ‘확신‘도 결합한 의미였다고한다. 우수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살다 느닷없이 폐암 판정을받았던 폴 칼라니티가 그랬다. 본인 스스로가 뛰어난 의사이자인문학자였던 그는 자신의 생존율과 완치율을 추정할 수 있는여러 통계 자료를 굳이 해석하지 않았다. - P21
"그래도 남편만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그의 사랑은 오락가락했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계산된 방식일 때가 많았어. 자신이 미리결정해서 행동했고, 내 바람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지." 현대여성들의 삶과 우정을 그린 최신 드라마 속 대사 같지만 무려1861년에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쓴 소설 『회색 여인의 한 대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여자를 자신에게 끼워 맞추려 애쓴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금세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 P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