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 A-Z
얼프 퀴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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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요한 화가를 꼽으면 그중 하나로 항상 등장하는 에드워드 호퍼. 산만한 친목 다짐을 했던 당시 예술계, 특히 유럽계 미술인들과 거리를 두고 매우 미국적인 활동과 작품을 이어나갔다. (호퍼와 피카소는 1살 차이다. 그런데 호퍼는 유럽여행 당시에도 피카소의 존재를 몰랐고 뒤늦게 알게 된다.)

색감 사용에 탁월한 화가가 있다면 인상파를 시작으로 로스코, 호크니 같은 인물을 들 수 있지만 특히 어두운 색감으로 멜랑꼴리함을 전달하는 화가는 단연 에드워드 호퍼를 최고로 뽑을 수 있다. 흔히 그를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표현한 화가라고 칭하는데, 그의 작품에서 특히 도시의 어두운 모습에서 색감 대비, 때론 과장을 통해 특정 분위기를 강렬히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 영화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가까운 예시라면 공효진과 공유가 나왔던 SSG(쓱) 광고, 특히 히치콕의 영화와 <더 샤이닝>, <로마의 휴일> 등을 들 수 있다. 영향은 상당해서 따로 검색해서 봐도 될 정도다. 이미 그의 영향은 알게 모르게 미디어에 녹아들어 있다.

그가 매우 미국적인 이유는 그가 대륙 장거리 여행을 즐기며 차에서도 작품을 그리는 등 활동과 영감의 주 무대가 미국이었기도 하지만 작품의 대상이 주유소, 자동차, 식당, 미국식 주택, 어두운 도시 같은, 미국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괴테와 같은 시인을 좋아해 그 흔적이 작품에도 녹아있는데, 작품은 무거운 느낌을 주며 그 느낌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또한 무의식을 드러내면서 색감의 대비 혹은 과장을 통해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의 일부 요소는 그의 표현을 위해 비현실적으로 그러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어려운 메시지나 정신 사나운 요소들을 때려 박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분위기와 호퍼의 시선에 집중하게 되며,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야말로 사로잡힌달까. 등장인물들이 생각하거나 바라보고 있는 대상들이 생략되면서 더더욱 깊은 생각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호퍼는 폴 고갱과 같은 화가가 현대적 관점에서 비판받는 것처럼, 가부장적이며 아내 조세핀의 능력을 억압하고 폭력하며 때로 작품으로 그녀를 비하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조세핀은 호퍼에게 영향을 주고 나름대로의 예술가적 능력을 가졌지만 무시당하며 그를 내조하는 역할에 그쳐버린다. 하지만 조세핀은 많은 호퍼 작품의 모델로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이 조의 우울함일지도 모르겠다.

고갱에게 타히티 여성이 있고 호크니에게 물이 있다면 호퍼에게는 숲과 빈 방이 있었다. 특히 빛이 비치는 공간에 집중했는데, 그의 그림을 보면 인상주의의 화풍이 남아있는 동시에 명암의 대비를 통해 특유의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화풍을 개발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상주의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호퍼를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호퍼는 자신의 그림이나 표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모든 예술의 큰 부분을 무의식, 잠재의식의 발현으로 보았기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무의식과 화풍에 영향을 미친 작품의 발전과 성장 과정을 보는 것도 일종의 재미다.

<호퍼 A-Z>는 알파벳순으로 키워드를 정해서 호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호퍼의 주요 작품과 동시에 주요 내용을 전달해 이해를 돕는다. 단어와 작품을 이어주기에 읽는 재미가 있고 쉽게 읽힌다! 현재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호퍼 전시를 가기 전에 보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퍼 전시회에 대표 작품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는 평이 있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들을 곱씹으면 인물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호퍼 작품을 선호하진 않는데, 그가 비교적 온실 속 화초처럼 살기도 해서 그런지 특유의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일종의 우월의식이 비치고 혁신적 시도가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내 취향이 팝아트나 살바도르 달리 같은 화가라서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인기 있는 화가는 이유가 있고, 그 내막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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