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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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라는 소설가는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다. 기자생활을 하며 간간히 산문집을 발표해오다 40이 넘은 나이에 난데없이 소설가로 등단하여 [칼의 노래]이란 장편소설로 동인문학상, [화장]이란 단편소설로 이상문학상,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중 하나로 떠올랐다. [강산무진]은 김훈의 첫 소설집으로 [화장]과 [언니의 폐경]과 표제작인 [강산무진]을 비롯한 총 8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김훈의 남성지향성을 보여주듯-[현의 노래]인터뷰에서 여자들이 모성과 인체의 신비를 지닌 주변인으로만 나오는 이유를 물으니 김훈은 도저히 여자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의 폐경]을 제외한 7개의 작품은 남성들이 주인공이거나 화자이며 그 중 [머나먼 속세]를 제외한 6개의 작품들은 중년의 남성들이다. [칼의노래], [현의노래]에서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역사적 의미보다는 개인적인 실존을 위협하는 삶의 허무를 어떻게 돌파하고자 하는 중년 남성들의 고뇌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강산무진]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대적 배경이 현대로 이동하긴 했지만 IMF나 질병, 일상 앞에서 느끼는 삶의 허무와 인간의 몸에서 느끼는 절실함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에 대해 탐구해간다. 

 

IMF 당시 회사의 중역이나 중소기업 사장으로 있다가 명퇴나 부도로 자리를 물러나야 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한국전쟁 당시나 직후에 태어나 힘들게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출세를 향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왔고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 따라 함께 자신의 위치를 상승시키며 앞만 보며 달려온 세대이다. 김훈은 이러한 세대의 인물들 중 IMF나 치명적인 질병 등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인물들에게 주목한다. [배웅]-중소기업 사장이었던 택시기사, [화장]-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 화장품회사 상무, [항로표지]-중소기업 상무였다가 회사부도 후 등대로 부임오는 직원, [고향의 그림자]-중견 형사였던 택시기사, [강산무진]-간암으로 퇴직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물류회사 중역 등의 인물군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상황의 인물군임을 알 수 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나 [현의 노래]의 우륵과 같은 인물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직무와 삶의 실존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전쟁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순신은 칼을 겨눠야 할 대상이 있었으며, 우륵은 남겨야 할 음악이 있었다. 하지만 근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강산무진]의 인물들은 이순신이나 우륵과 같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그럭저럭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일상의 위협 앞에 어떤 모험이나 결정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냥 주어진 변화를 받아들이며 그 변화를 묵묵히 견뎌나갈 뿐이다.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고 회사의 여사원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의 망상을 하지만 불륜을 저지르거나 하지는 않으며([화장]), IMF나 우연에 의해 야기된 자신들의 기존 지위의 몰락에 대해 특별한 일탈을 하거나 하는 일 없이 묵묵히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 원인을 반추한다([배웅], [항로표지], [고향의 그림자], [강산무진]).

 

또 그들은 주변 사람들-주로 여성-의 육체를 오감으로 느끼고 상상하며 그 절실함과 안쓰러움에 힘들어한다. 이 부분은 김훈 소설의 특이점으로 볼 수 있는데 몸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며(특히 [화장]에서 그 진수를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주인공들의 감정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절실함이나 안쓰러움은 그들이 느끼는 삶의 허무함과 연결된다.

 

 [뼈]의 경우는 사학자인 서술자가 후배인 오문수라는 다소 일탈적인 인물에 대해 묘사하면서 기원리라는 마을에서 출토된 유적의 의미없음과 여자의 엉덩이 뼈를 보며 느끼는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원리 유적의 의미없음을 의미없음 자체로 규정하는 나와 기원리 유적을 통해 연구논문을 쓰려고 하는 오문수의 갈등을 통해 역사란 어떤 의미를 지니냐는 의문과 학문으로서의 역사적 접근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개인적으로 다소 느낄 수 있다. [머나먼 속세]는 외딴 섬의 절에서 큰스님에 의해 키워진 내가 프로 권투 선수로 챔피언 도전전을 벌이며 자신이 뭍으로 나오는 과정을 반추하는 이야기이다. 젊은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것이 이채로우며, 권투 경기의 묘사가 뛰어나다. 물론 그 묘사의 와중의 김훈 특유의 문체는 남아있지만.

 

[언니의 폐경]은 이혼한 중년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워 그의 내면을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김훈 소설의 발전차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아직은 나와 나의 언니를 성격 묘사가 묵묵히 주변을 받아들이고 육체에 안쓰러움을 느끼는 기존 김훈의 다른 남성 캐릭터들과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달, 강과 주기를 맞춰 생리가 터지고 현실에 순응하는 언니의 모습은 지나치게 여성을 신화화하는 부분이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김훈 소설의 다변화의 차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김훈의 첫 소설집 [강산무진]에 수록된 작품들은 근대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와 삶의 절실함과 허무함을 자신의 또래들이 어떻게 해쳐나가고 있느냐?를 보여주고 있다. 특유의 짧고 힘있는 문체는 여전하며 육체에 대한 핍진한 묘사와 그로 인해 느끼는 심리묘사가 돋보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고 있다. 작품집에 주인공들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공통분모를 살펴보고 그와는 약간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을 따로 간단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했는데 작가의 각개 작품들을 너무 일반화해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며 김훈의 차기작을 기대한다.

 

P.S : 으헉...글쓰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리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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