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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한산성은 단편집 [강산무진] 이후 출간된 김훈의 장편소설이다. 김훈 선생 한동안 단편도 안쓰고 잠잠하다 했더니 짱박혀서 써서 내놓은 소설이다. 4/14에 초판이 나왔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도 있군..ㅋ
일단 문체의 힘과 미려함에 매혹된다. 군세, 민간 마을의 풍경, 자연경관과 그 내재된 힘 등에 대한 특유의 묘사는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내 눈을 책에서 뗄 수 없게 만든다. 현실을 너무나 치열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사의 큰 틀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따라가는 편이다. 그 흐르는 역사의 과정에서 인조와 예조판서 김상헌, 이조판서 최명길, 영의정 김류, 수어사 이시백, 청장 용골대, 통역 정명수, 청왕 칸 등을 주요인물로 내세워 그들의 심리와 언행을 주로 서술한다. 이들은 다른 김훈의 역사소설의 인물들과 비슷한 고민을 한다. 대의로는 갈 수 없지만 살기 위해 갈 수밖에 없는 길이 겹쳐져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할 것인가...청나라가 명을 버리고 자신들을 섬기라고 요구하며 왕자와 빈궁을 보내라는 요구를 조선은 거절하자 청은 바로 조선을 침략한다.(병자호란) 조정의 신하들은 사직을 보존하고자 10년전 정묘호란때와 같이 강화도에 들어가 응전하자고 임금을 조른다. 인조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강화도로 가려하지만 청나라 용골대의 군사들이 이미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막아놓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남한산성에 들어간 조선 조정에게 용골대는 수위를 높여 세자와 종실 식솔을 내놓으라는 더 높은 수위의 요구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의 인물들은 요구의 수위가 더 높아지기 전에 화친-굴복의 제스처을 할 것인가, 끝까지 싸워 화친을 하더라도 좀더 나은 조건으로 할 것인가, 대의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인가로 임금이 있는 묘당(나라를 다스리는 조정을 일컫는 말)에서 매일 논의한다. 성벽 인근에서 몇 번의 소모전을 하며 버티는 싸움을 하며, 여러 논의를 하지만 결론은 뻔한 것이다. 어차피 투항은 해야하는데 그 방식과 관련된 수많은 말과 말의 부딪힘이 숨가쁘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랄까? 조정의 인물들은 삶의 무게와 죽음의 무게를 가늠하며 논쟁을 하고, 청의 인물들은 힘도 없으면서 버티는 예의 나라를 의아해한다.
결국 인조는 출성(-버티던 성을 나선다=청에 투항한다)을 결정하고 칸앞에 이마를 찧으며 절을 한다. 우리가 흔히 삼전도의 치욕으로 역사시간에 배우는 그 풍경을 작가는 아주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가공의 인물인 서날쇠를 제시한다. 대장장이인 서날쇠는 그 시대에 안어울리는 근대적인 인물이랄까? 자신이 할 일을 확실하게 하는 능력과 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확실하게 준비하는 개인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작가는 서날쇠의 모습을 통해 말들만 무성하지만 무력한 묘당의 모습을 민중의 모습과 대비시킨다. 그 대비를 통해 왕조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대의를 내세우건 삶의 길을 찾아가야하는 민중의 생활과 말이 무성하지만 결국 현실의 길을 가야하는 왕조의 무상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 길은 하나밖에 없지만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한 문구가 많이 나온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 "다만 당면할 일을 당면할 뿐이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도 삶은 있다.",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 "화和, 전戰, 수守는 다르지 않사옵니다." 등과 같은 대사나 문구들은 당시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남한산성]은 역사소설이면서 조정에서 고민했을 법한 많은 고민들을 치밀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수작이다. 그리고 당시 민중들의 심리-무력한 조정에 대해 빈정거리는-와 당시의 전황과 청나라 인물들의 심리와 조선에 대한 생각들이 개연성있게 잘 묘사하고 있어 작가의 치열한 의식을 느낄 수 있다. 게으른 독자인 내가 사자마자 며칠만에 다 봤듯이 진중한 문장의 내용임에도 흡입력 있는 문체이기 때문에 금방 재밌게 보며 여러 생각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