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미 - 누군가를 만날 줄 몰랐던 여름, 베를린
이동미 지음 / 모비딕북스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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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워지는 것보다 소진되는 것이 더 많은 삶을 살고 있다면, <동미>를 읽고나면 마음 속에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나는 <동미>를 읽고, 사랑했던 사람이 생각났고, 앞으로 펼쳐질 사랑에 대한 기대가 들었다. 그래서 당신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채워지는 것이 적은 요즘, 이 책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2014, 3년 만에 다시 베를린을 찾았을 때, 예전 같지 않은 친구들과 환경 속에서 나는 조금 외로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추위 속에서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던 이전의 외로움과는 다른 쓸쓸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더 이상 테크노 클럽에 가지 않았고, 미친 듯이 술을 퍼 마시지도 않았으며, 암호를 받아 입장하는 비밀 파티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놀이터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한쪽 벤치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쳐다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만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발전도 없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결혼하지 않은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멀어지고 추억은 뒷방에 쌓이는 게 쓸쓸했다." (p. 6 『동미』 Prologue)


나도 대체로 지금처럼 자유로운 삶에 만족하고 있지만, 작가처럼 쓸쓸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여행을 떠나거나, 책을 많이 읽거나, 운동을 많이 하거나, 술을 많이 마셔서 쓸쓸함을 달랜다. 일상은 물론 바쁘기 때문에 쓸쓸함이 들어올 공간이 적다. 쓸쓸함이 느껴질 때는 오히려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작가는 오랫동안 잡지 에디터-매거진 편집장 등을 거쳐 프리랜서 에디터 / 여행작가로 살았다. 그러다가 20년 지기 친구와 함께 경리단길에 '식스먼스오픈'이라는 바를 차렸다. 일 년에 6개월, 그 중에서도 날씨 좋은 계절(5~10)에만 문을 열고, 나머지 계절에는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웬걸 바를 열고 1년도 안 돼서 함께하던 친구가 결혼을 했다. 바에 놀러오던 긴 머리 남자와 연애하다가 6개월 만에 결혼을 했고, 그 둘은 베를린에서 1년만 살고 오겠다며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베를린엔 가본 적도 없는 그녀가 가서 살고, 베를린 책까지 내며 뻔질나게 오가던 나는 서울에 남는, 그런 것. 0.1초쯤 억울해하다가 단짝 친구가 살고 있는 베를린은 또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각별해졌다. 정아를 만나러 베를린을 다녀온 뒤로는 더더욱. 내가 지금껏 사랑했던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베를린을 사랑하게 되었다." (p. 7 『동미』 Prologue)


나는 해외여행이라곤 다녀본 적이 거의 없다. 19세 때 생각을 잘못해서(한국도 잘 모르는데, 외국엘 먼저 나다니는 건 별로), 2007년에 처음 생긴 네일로(7~10일 무제한으로 기차여행 가능한 상품)를 타고 한국을 뻔질나게 돌아다녔다. 무려 15일간 친구와 함께 배낭만 메고 한국을 누볐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그 이후로 해외 여행을 과감히 떠나겠다는 결심이 잘 서지 않았다. 작년에 베트남엘 10일 다녀왔는데, 그 이후로는 틈만 나면 외국에 가보려고 했지만 이놈의 코로나가...


그래서 올해 봄-가을에는 서핑하러 강릉에 많이 다녀왔다. 6월에는 매주 갔는데, 강릉 바다를 생각하면 쓸쓸하지가 않다. 물론, 괴로움이 많을 때 생각나는 강릉 바다는 나를 쓸쓸하게 하기도 한다. 지난 사랑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감정처럼.

작가는 베를린에 가서 사랑을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도 원래는 여행기로 쓰려고 했으나, 사랑 이야기가 된 것.


"뒤늦게 만난 중년의 연애 이야기가 뭐 대단한 게 있을까마는,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싱글로 살던 한 여자의 또 다른 삶의 과정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사람과 깊이 교감하며 연애와 삶에서 새로 알게 된 것과 느낀 것들, 즐거운 한때를 기록한 이야기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뒤늦게 만난 중년의 연애 이야기가 뭐 대단한 게 있을까마는,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싱글로 살던 한 여자의 또 다른 삶의 과정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사람과 깊이 교감하며 연애와 삶에서 새로 알게 된 것과 느낀 것들, 즐거운 한때를 기록한 이야기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p. 9 『동미』 Prologue)


작가가 사랑하는 남자 '스벤'은 작가와는 참 많이 다르다. 차이점이 많은 둘이서 사랑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참 흥미롭다. 작가는 고기파 스벤은 베지테리언, 작가는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지만 스벤은 잘 운다. 작가는 오랫동안 싱글로 살았지만 스벤은 아이가 둘 있다.


나도 가끔 채식을 하고, 아이는 가질 계획이 없으니까 스벤이 잘 운다는 점이 참 나와 다른 점이라고 생각했다. 감정표현에 있어서 나는 작가와 거의 비슷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스벤은 감정 표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난 우는 게 창피하지 않아. 그래서 눈물도 금방 나. 혼자 있을 땐 오히려 안 울지만, 내가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선 금방 울 수 있어. 동양에서는 남자가 우는 일이 흔하지 않고 터부시된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남자건 여자건 감정을 내보이고 우는 건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그걸 참고 숨기는 게 문제지. 참고 참았다가 나중에 화병이 되거나 폭력적으로 되는 게 더 나쁜 거야. 참으면 더 큰 병이 돼. 나도 한동안 불안 장애를 앓았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고 얘기해. 그건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니까." (p. 56-57 『동미』 「PART 2 이 남자, 스벤」 #4 그가 처음 울던 날)


이 대목에서 그가 불안 장애를 앓았다는 게 눈길을 끌었다. 내게도 불안함이 많은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자주 불안한 상대에게서 나는 멀리 떠나버렸지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삐져나온다. 자꾸 사랑을 확인하려는 스벤에게 작가는 "아니 도대체 왜 자꾸 그런 걱정을 하는 거야? 널 좋아한다고 매일같이 말하는데, 네 옆에 있겠다고 하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해?"라며 반복되는 질문에 귀찮고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되물음이 그에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불안해서 그래. 불안하니까 너한테 계속 확인받으려는 거야.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걸, 나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걸 자꾸 말로 들어야 안심이 돼. 왜 불안해하냐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야. 나의 불안이 그냥 감기처럼 찾아오는 거야." (p. 76-77 『동미』 「PART 2 이 남자, 스벤」 #9 불안이 감기처럼 찾아온 것뿐이야)


사랑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 뒷 얘기가 궁금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은 모든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고, 가장 가까이에서 평생을 고민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동미』를 통해 읽은 동미와 스벤의 구체적인 사랑에서 나는 내 사랑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스테디셀러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지속가능한 사랑에 대한 답은 인격의 성장에 있다."고 썼다. 20대 초반에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고, 내 사랑을 가꿔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금, 30대 초반에 읽은 『동미』에선 동미와 스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감정표현, 불안에 대한 둘의 이야기에선 내가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필요한 것이 조금은 갖춰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려 인격이 성장했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재밌는 사실은, 내가 10년에 걸쳐 읽은 두 권의 책이 지금 예스24 연애/사랑 에세이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고 있다는 점이다. 『동미』가 출간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단숨에 2위에 오른 걸 보면 이 책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 꽤 많다는 생각에 안정감, 동질감이 느껴졌다.


"동미는 자유롭다. 그의 인생엔 걸림돌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 연애, 결혼, , 그 어떤 삶의 루틴 앞에서도 동미는 기죽지 않고 살았다." (『동미』 책 날개에 새겨진 작가 소개)


이런 작가의 사랑 이야기가 어떤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또한 동미처럼 기죽지 않고 살고 싶은 사람에게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베를린에 처음 간 건 13년 전이다. 어두운 기차역에서 하얗게 빛나던 내 슬리퍼가 생각난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죽 부츠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가고 싶었지만, 금이 간 발가락에 붕대를 감은 상태였다.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싱글로 살던 한 여자의 또 다른 삶의 과정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사람과 깊이 교감하며 연애와 삶에서 새로 알게 된 것과 느낀 것들, 즐거운 한때를 기록한 이야기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야. 나의 불안이 그냥 감기처럼 찾아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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