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이야기 -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
김웅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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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문계 출신이다. 호기심이 많았던 사춘기 시절 잠깐 지구과학과 물리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수학에 한계를 느껴 인문계를 택했다. 대부분 학생들이 그렇지 않을까. 인문계열 공부가 딱히 재밌거나 소질이 있어서라기보다 단지 수학이 싫어서 자연계를 포기하는 현상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수학 수준을 조금만 낮췄더라면 우리나라 자연과학이 수준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문계를 선택한 이후,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뒤적였다. 대학교 시절부터 자연과학과 담을 쌓고 살았다. 내가 살아갈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자연과학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나와 전혀 상관없을 줄 알았던 자연과학이 요즘 내 인생을 파고들고 있다. 내 인생뿐만 아니다. 학문 영역에서도 자연과학인 생물학이 다윈의 진화론을 통로 삼아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범주를 넘나든다.

 

"나는 자연의 평범한 사건일 뿐이다"

 

 

김웅진의 <생물학 이야기>도 그런 책이다. 생물학은 지구의 탄생부터 식물과 동물을 거쳐 인간까지 탐구 대상을 넓힌다.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문학의 핵심 화두의 답을 찾는데 생물학이 기꺼이 도구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인간중심적 사고 때문에 인간이 아주 특별한 존재인양 스스로를 치켜세워 왔지만,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존재와 생물과 인간과 '나'는 모두 연속선상에 있는 평범한 사건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라는 존재가 수많은 '평범한 사건'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니. 이런 깨달음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도교의 '물아일체', 불교의 '해탈'에 이르는 경지다. 도교와 불교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수십 년간 속세를 떠나 수양을 해야 이를 수 있는 경지를, 책 한 권의 생물학적 지식으로 다다를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물론 깨달음을 체화해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또 다른 수양이 필요하다.

 

깨달음의 경로를 요약하면 이렇다. 생물과 무생물 모두 원자나 분자 등 물질로 이뤄져 있다.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의 결합으로 이뤄진 독특한 물리 현상이 생명이다. 생명을 가진 동물은 물론 인간도 물질로 이뤄져 있다. 생명은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 즉, DNA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진화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의식, 행동도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하면서 사회적 동물이 된 인간은 자기정체성을 부여했다. 사회적 관계와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를 인식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자기를 인식하는 능력이 자의식이다. 자의식은 자기애와 자기집착을 낳는다. 사실 자기애와 집착은 DNA가 만든 신기루다. 자기애와 삶에 대한 집착은 인간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아끼며 생존에 전력투구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언젠가 죽어 사라지고 DNA는 존속된다. (자신의 복제된 DNA를 가지고 있는) 아들, 딸의 생존을 책임지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도 DNA의 속임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자기집착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을 객체화해서 인식하는 것입니다. 과학, 특히 생물학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자기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의식은 비로소 자신과 사물을 객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스스로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나'라는 인간은 다른 인간들이나 생물들, 나아가서 무생물과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존재(일시적인 자연현상)임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은 객관적 자기통찰은 우리를 진화의 감옥인 '자아'로부터 해방시켜줍니다."

 

생명의 열쇠를 쥔 다윈의 진화론

 

이러한 깨달음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알아야 한다. 지구의 역사라는 억겁의 시간 동안 수많은 DNA가 복제됐다. 복제 과정에 희박한 확률로 변이를 일으킨다.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됐지만 40여억 년 동안 수많은 변이가 일어났다. 자연의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면서 장기적으로 환경에 적응한 변이는 번식을 통해 살아남고, 그러지 못한 종은 사라진다. 이것을 '자연선택'이라고 부른다. 생물은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여러 종으로 진화했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과 식물은 영속하는 DNA의 운반체에 불과하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에 발표된 다윈의 진화론이 어떻게 증명되고 명백한 진리로 자리 잡았는지를 지구의 탄생부터 뇌과학이 갓 발전하기 시작한 현재까지의 역사를 통해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주와 태양계, 지구의 탄생부터 최초생물이 발현되기까지를 요약한 내용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긴 서술이 부담스러우면 징검다리처럼 건너뛰어도 된다'고 했지만 검증된 최신 이론의 엑기스만 뽑아서 과학자가 옛날이야기 하듯 단 8페이지 분량으로 요약해 설명한 글을 읽는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 같았다.

 

저자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최초복제물질의 탄생과 세포의 형성, 다세포생물이 다양하게 진화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증명하는 실험과 연구를 소개하고,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결국 뇌과학과 사회생물학에 이르러 인간의 의식과 행동, 문화라는 인문학과 만난다.

 

국제적 과학자가 우리글로 풀어낸 자연과학

 

요즘 인문학 서적을 읽다 보면 다윈의 진화론과 뇌과학 등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인용된다. 이미 진화론은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뿐만 아니라 경영학 등 실용학문에서도 활용된다. 이기적인 인간이 어떻게 조직 내에서 협력하는 지도 진화론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경영이론을 실제로 적용하는 기업들도 생기고 있다. 진화론이 선사하는 통찰은 의외로 넓고 깊다.

 

여러 서적에 단편적인 사실만 소개된 생물학 지식에 목마르던 참이었다. 그렇다고 전문 번역 서적을 읽자니 버거웠다. 생물학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한글로 쓴 제대로 된 자연과학 서적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자연과학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한국인 학자도 드물고, 더불어 대중서적을 쓸 만큼 글 솜씨까지 겸비한 분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쓴 김웅진 박사 같은 사람은 귀하다. '생물학이야기'라는 소박한 제목을 붙였지만 저자는 서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분자생물학, 생물정보학을 연구하면서 지놈지도 작성에 필요한 핵심기술개발에 참여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학자이다. 칼텍지놈연구소 소장 및 미국 지놈프로젝트 책임연구원으로 인간염색체 시퀀싱을 담당했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외국서적을 번역한 글을 읽을 때의 묘한 불편함 없이, 국제적인 학자가 우리글로 쓴 자연과학 대중서적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흔하지 않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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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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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남을 의식하는 편이다. 내 기분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더 신경 쓴다.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온 일종의 ‘장남 콤플렉스’이다. 몸에 밴 이러한 습관 때문에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장녀로 태어났지만 남의 시선보다 항시 자신의 마음을 중요시 여기며 사는 ‘옆지기(내자)’는 나더러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연애시절부터 10년 넘게 듣고 있는 말이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 책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외로웠던 유년기와 방황하던 10대부터 30대, 그리고 40대의 고뇌와 50대인 현재 모습까지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반추했다. 흥미진진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마는 작가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 같았다.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함께 지내던 유년기는 40대가 될 때까지 방황하는 작가의 인생을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이었다. 의미 있는 방황이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키워냈을 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복기하며 그동안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또박또박 짚어본다. 작가는 이러한 복원의 글쓰기를 통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라고 적었다.


자신의 인생을 소설처럼 엮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부러웠다. 특히 까마득한 유년기 시절의 세세한 부분을 복원해내는 기억력이 놀라웠다. 반면 내 기억의 파편들은 하나의 서사가 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어릴 적 경험들은 이미 기억 너머 저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가는 “글로써 남기지 않는 한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다시는 떠올릴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썼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이렇듯 또렷이 기억(어쩌면 기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동안 줄곧 일기라도 쓰지 않은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작가와 나는 열아홉 살 차이가 난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던 해에 내가 태어났다. 대학교 1학년 때 그의 소설 ‘은어낚시통신’을 읽은 이후 15년 동안 여러 번 그의 작품과 마주쳤다. 세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그의 작품에 공감이 간다. 작가의 인생이 담긴 이번 에세이집은 더욱 더 그랬다. 이 책에 담긴 고향, 조부모,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만의 특별한 경험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이기도 하다. 한 인간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이러한 소재들은 세대를 넘어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인생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기억상실의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나의 과거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사과밭에서 안개처럼 밀려들어오는 과육 향기”라는 구절에서 여름방학 외갓집 툇마루에서 맡았던 갓 딴 복숭아 향이 코끝에 스며들었고, “가을이 되면 사과가 발끝에 채여”라는 표현에서 특산물이 쥐포라 집집마다 쥐포를 말리던 풍경과 바닥에 버린 쥐치 껍데기를 피해서 걷던 고향집 골목길이 떠올랐다.

결국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면서 자신을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집의 중심이며, 곧 삶의 배꼽”이자 “부재했던 어머니의 자궁을 대신한 공간”인 부엌에서, 자신은 “먹이를 받아먹으며 몸을 불려가던 커다란 태아”였다고 작가가 깨닫듯이 말이다. 작가는 부모와 함께 살게 된 “아홉 살로 다시 태어나 어미의 부엌에서 어미의 슬픔을 먹고 성장”했다고 고백한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 하나하나는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경험들이다.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도 끄집어내 당당히 두 눈을 뜨고 직시해볼 일이다. 현재 나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이 과거의 어떤 경험에 연유하고 있는지 곰곰이 살펴봐야겠다. 자신을 들여다본다. 나를 찾아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이다. 지금의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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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신간평가단님의 "<소설> 분야 신간평가단 지원하기"

필명 솔이아빠(명진이)입니다. '독서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개인블로그에 서평을 올렸다가, 서평만 따로 모아 놓을 블로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만들었습니다. 서평이라기 보다는 '독서 일기' 수준의 편안한 글들입니다. 만든 지 얼마 안 돼 방문자 수는 아직 미비합니다.  신간 평가단은 제 블로그 활동하고 잘 맞아 떨어질 것 같습니다.

아래, 지난 7, 8월에 작성했던 '리뷰'를 링크합니다. 관심 갖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리뷰- 누가 걸어간다, 윤대녕

리뷰 -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원재훈

블로그 주소 = tellbook.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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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걸어간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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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소설집 '누가 걸어간다'를 읽었다. 내게 작가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마흔 살을 넘긴(2004년 발간했으니 지금 작가의 나이는 40대 후반쯤 되겠다) 작가의 중후한 사색의 깊이를 맛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도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상처 많은 인간이지만, 평범한 인간들보다 보다 먼저, 보다 깊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독자는 그 사색의 결과물, 즉 작가의 창조물을 읽으며 작가에 제기한 인생의 문제를 사색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중단편 소설에는 다양하지만 중첩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결혼식 날 신부를 떠나보낸 남자, 그 남자를 떠나 세기말 가장 해가 늦게 지는 곳에서 자살하려는 여자, 매일 밤 같은 시간 사라지는 동거녀를 찾기 위해 남의 시간을 사는 남자, 아내가 없는 열흘 동안 분열된 자아와 대화하며 고뇌하는 남자... 모두 상실의 아픔에 상처받은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 작가 자신이 투명되어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특히 작가가 제주도에 기거하면서 쓴, '찔레꽃 기념관', '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 '올빼미와의 대화'에는 작가 자신이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상실과 단절로 상처받은 인간들,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할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이 책의 해설에서 평론가는 이를 두고 정체성의 상실, 정체성의 위기라고 했던 것 같다. 윤대녕 작가도 정체성 상실을 고민하고 있고, 이 책은 읽은 나도,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도 '작가의 말'에서 "어찌된 일인지 내게는 작가이기보다 사람이기가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요즘 내가 인터넷신문 기자 질을 하면서 느끼는 혼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번 주 주말 10년 만에 지리산을 찾는다. 결국 나의 상실된 정체성을 현실 공간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때 현실 공간을 일시 정지 해두고 다른 공간에서 고민해 보는 편이 쉽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현실 공간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다. 답을 찾아 돌아올지, 아니 적어도 현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길러서 돌아올지 아직 불명확하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나의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혹 답을 찾았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겠지. 그래봐야 내가 쳐 놓은 찔레꽃 울타리 안에서 유효한 답일 뿐일 지도... 나는 언제 그 울타리를 넘어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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