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1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무언가를 정의내린다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특히나 각자의 주관에 따라 기준과 형태가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 개념에 대해 생각하면 더 그렇다. 모두가 미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그 기준으로 여러가지 사물 중에 가장 예쁜 것-혹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보면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내가 이제까지 본 디스토피아 소설 중에서 가장 예뻤다.






디스토피아 속의 아름다움.


퓨어가 예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소설 안에서 직접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은 자주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제약하는 것이 미와 직결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에 대한 추구는 개개인 별로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체주의 사회에서 억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스콧 웨스터펠드의 『어글리』시리즈는 전신 성형을 통한 아름다움의 평준화, 외모지상주의를 다루었다. 여기에서 사회는 미의 기준 자체를 통합하고 그것만을 추구하고 수용하게 했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좀 더 극대화 시킨 것에 불과하다. 물론 어글리에서는 인간 내적인 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고 시도하나, 성공적으로 풀어내지는 못했다. 앨리 콘디의 『매치드』 시리즈는 디스토피아답지 않은 밝고 선명한 색채를 소설 안에서 그려내는데 초록색 드레스, 예쁜 남녀주인공, 은색 박스 등의 이미지를 통해 예쁘게 치장하는 데 성공한다. 디스토피아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감추어버린다.

 

그런데 이 소설들에 비해 『퓨어』는 인간에게 국한되지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세계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퓨어는 결코 위의 두 소설에 비해 예쁘지 않다. 알록달록하게 더 예쁜 건 매치드 시리즈고, 반짝반짝 빛나는 미남미녀가 떼거지로 나오는 건 어글리이다. 거기에 비해 퓨어는 각종 기괴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여러사람의 몸이 붙어있고, 손 대신에 인형이 달려 있고, 땅에서는 위험한 괴물틀이 튀어나오고, 등짝에는 새가 심어져 있다. 주변을 떠도는 검은 먼지, 대폭발로 인한 황폐한 사회. 어딜 보더라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광경들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프레시아가 찾던 아름다움. 고장난 나비 장난감. 기괴하지만 아름답고. 어둡지만 아름답다. 모든 것이 파괴된 곳에 남아있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일까. 보석처럼 희귀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일까. 값싸게 널려있는 예쁜 것들과는 다른, 정말 귀중하다는 느낌. 그런 느낌. 


그녀는 나비 하나를 집어 태엽을 감았다. 나비가 날개를 바르르 떨며 쌓인 먼지를 털어 내며 빙글빙글 돌았다. 춤추는 듯한 재 먼지 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사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예쁜 것도 같았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이 보였다. 아름다움은 사방에서, 심지어 추한 것들 속에서도 문득문득 발견된다. 하늘에 구름이 무겁게 걸려 있었다. 가끔씩 구름은 검푸른 기미마저 띠었다. 땅속에서 솟아오른 이슬방울이 검은 유리 조각 위에 아직 알알이 맺혀 있었다.      [1권 18-19쪽]






패트리지와 프레시아의 길


인형 머리 손을 가진 프레시아, 반동분자 브레드웰, 어머니를 찾아나선 패트리지 이 세 소년 소녀의 모험은 생각보다 그리 긴박하지 않았다. 짜릿한 모험보다는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가 있었다. 패트리지는 진실을 좇고, 프레시아는 아름다움을 원했고. 아름다움은 진실 속에 있었을까? 둘이 하나의 방향을 봤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닐까. 어쨌든 진실을 탐구해가는 그 과정이 꽤나 흥미진진하고, 패트리지가 찾는 것이든 프레시가가 좇는 것이든 양쪽 다에 수긍을 할 수 있었다. 로맨스도 내가 처음에 뻔하다고 생각한대로 흐르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는 건 안 비밀.


"내겐 이런 게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건 날아가지도 못하잖아. 태엽을 감으면 날개를 팔락대기는 하지만, 그것뿐이야."

"꼭 가야할 데가 없어서 안 간 건지도 몰라."

[2권 171쪽]



패트리지와 프레시아가 걸어갈 길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지. 그들은 원하는 걸 정말 얻어낼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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