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 - 프랑스문학 3
드니 디드로 지음, 이봉지 옮김 / 장원 / 1993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릴 적부터 수녀에 대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수녀원이나 수도원 생활에 대한 동경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 필요이상의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내 성격이 둥지를 틀 곳을 찾아 수녀원의 조용하고 단정한 삶의 이미지를 포착해 주위의 누가 한마디의 권유라도 한다면 서슴지않고 그 곳으로 들어가겠다고 내심 다짐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카톨릭 신자가 아닌 것을. 물론 각종 미사나 봉사활동에는 기꺼이 참여할 수 있지만 종교에 대한 신념 또는 확신없인 그 모든 것이 가식적인 잘난체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 모든 것을 한 켠으로 잠시 치우고 들어가려 한들 그 곳에서 나를 받아줄리 만무하고. 게다가, 이젠 수녀원의 피상적 이미지‘만’을 떠올리기엔 내가 너무 커버렸다.

그런 연유로 내게 수녀원이란 공간은 실제로 갈 순 없지만 그저 때때로 떠올리며 잠시나마 마음의 안식을 찾는, 미지의 고향 같은 상상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곤 가끔씩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녀들의 생활과 고뇌를 살짝살짝 엿본다. 그러다보면 얼마나 다양한 내면의 삶을 포착할 수 있는지…

작년에 감명깊게 본 영화 <파계>에서 오드리 헵번이 분한 고귀한 수녀 가브리엘은 말했다. 자신은 자비와 겸손과 복종이 결여되어 더 이상 수녀복을 입고 있을 수가 없다고. 이처럼 자신의 양심에 끝없는 부족함을 느껴 수녀원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절박한 이유로 간절하게 수녀원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수녀>의 등장인물이 그 주인공인데, 이 소설은 부모의 강요로 인해 수녀로서의 소명의식 없는 수녀 생활을 하게 된 쉬잔느 시모넹이 여러 수녀원을 전전하면서 겪는 수녀원 생활의 비인간성과 그 안에서 파멸하고야 마는 인간들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여러 번 결단을 내리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집단을 이탈하려 했던 돌출행동에 대한 결과로 얻는 것은 모진 박해와 지쳐가는 몸과 마음일 뿐이다.
그녀는 자유의지가 아닌 타인의 강요에 의한 삶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첫머리에서부터 일찌감치 강조한다. 그리고는 수녀원이라는 닫힌 공간 안에서 뒤틀려가는 인간들의 광폭함을 고발한다. 그런데 사실 이건 그네들의 잘못이 아니라 수녀원이라는 공간이 원천적으로 비인간적인 공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고발하기 위한 작가의 사회적 메시지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쉬잔느는 그들 모두를 용서하고 불쌍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수녀>는 기본적으로 서간체 소설의 형식을 띠며 작품 말미에 이 소설의 관련 기원에 관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관련기사를 읽고서야 이 소설이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히 버무려진 꽤 치밀한 계략으로 이뤄진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약간의 충격과 함께.

40여년 전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도 프랑스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하니 이 소설이 처음 발간되었을 당시 얼마나 많은 기득권자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는지를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것은 비단 그 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얼마나 많은 의미없는 제도로 인해 그 안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지금뿐만 아니라 먼 훗날에도 자유와 제도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 조심스레 전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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