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 완화의학이 지켜주는 삶의 마지막 순간
캐스린 매닉스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아직도 그 날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의 하나뿐인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일주일 만에 차가운 병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하셨다.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드리는 것과 할아버지가 호흡하실 때마다 투명한 작은 관의 탁구공 같은 물체가 오르내리는 것을 체크하는 것뿐.

 

의식조차 흐릿한 할아버지는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으시곤 가족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시며 행복하게 잘 살라는 당부를 아끼지 않으셨다. 푹 자고 일어난 듯 한 얼굴을 보며 기적이 일어난 건가 싶어 어린 마음에 얼마나 기뻤었는지... 30여분이 흐른 뒤, 갑자기 할아버지의 호흡은 급격히 떨어졌고 눈을 감은 채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살면서 힘들 때마다 나는 그 날을 생각한다.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당신의 몫까지 더욱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느 순간 힘이 들 때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그런 순간이 한번쯤은 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눈물이 흘러 한 장 한 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수천 편의 드라마, 영화에서 생의 마지막에 선 이들과의 이별 장면이 나온대도 이 책만큼 죽음에 관해 사실적이고 때론 담담하게, 때론 가슴 저리게 표현해낼 수는 없으리라...

 

이 책의 저자는 완화의료 컨설턴트로서 자신이 담당했던 환자와 보호자, 가족과 함께 일한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죽음은 우리가 막연히 두려워하고 터부시해야 할 것이 아닌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자 일부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죽음에 직면한 환자들, 그들의 절망과 막연한 두려움이 완화의료 컨설턴트들의 적절한 치료와 끊임없는 상담(따뜻하고 친절한 대화)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평온하게 삶의 마지막을 거두는 순간들, 그런 환자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사후 관리까지 이뤄지는 시스템을 보면서 내가 할아버지를 보내드린 그 때 당시엔 왜 이런 제도가 없었는지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 때 내가 이 책을 미리 접할 수 있었더라면..

 

저자는 강조했다. 환자의 보호자들이 이별 후 담담하게 지내더라도 계속해서 고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같이 나누며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홀로 남겨지신 할머니의 마음을 한번 더 살피고 보듬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도 묵묵히 덤덤하신 모습에 그 깊은 내면의 숨죽인 울음까지는 알 길이 없었다.

 

책에는 단순히 '죽음이란 이렇습니다'라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궁금함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다 읽고나니 삶이 힘들다고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린 내 자신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고 잠시나마 삶을 기만했던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나약해질 수 밖에 없기에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은, 혹은 읽을 독자라면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마냥 두려워하며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남은 시간 동안 내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용서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삶을 마무리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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