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어! - 제2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수상작 사회와 친해지는 책
이남석.이규리.이규린 지음, 김정윤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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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디자인을 시작해, 벌써 몇 년째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디자인을 전공하지도 않았기에 디자인은 내게 언제나 '수단'에 불과했다. 디자인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의 디자인이 있었다.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아니, 더 정확히는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다.

이 책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어!>는 어린이를 위해 쓰인 책이다. 너무 오랜만에 읽어보는 어린이용 비문학이라 그 시작이 낯설긴 했지만, 쉽게 쓰인 문체에(글씨도 커다랗고!) 알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탓에 금방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여러모로 신선했다). 책은 효율적으로 디자인의 이모저모를 설명하기 위해 주인공 예린이와 유진이를 디자인 엑스포에 데려다 놓는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예린이와, 그림이라면 영 소질도 재능도 없다고 생각하는 유진이가 디자인 엑스포를 둘러보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친절한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하는 디자인 엑스포 투어는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했다.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인 것이 아니라 공공적이며 사회적이라는 것.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예린이는 물론이고, 디자인과는 영 멀 것만 같은 유진이의 삶에도 디자인은 중요하다는 것. 또, 디자인과 창의적 사고와의 관계, 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하는 방식, 디자인으로 어떻게 생각을 넓혀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신선했다.

프라톤 의자는 정원의 잔디를 확대해 놓은 것처럼 생겼다. (...) 예린이는 의자를 슬쩍 만져 보더니 털썩 몸을 맡겼다. 거대한 잔디밭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자세를 바꿔도 탄력 있는 폴리우레탄 재질의 풀 줄기가 받쳐 주어 편안하고 아늑했다. "개미가 된 느낌이에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디자이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의자에 앉기만 해야 하나요? 누울 수도 있고, 엎드릴 수도 있지요. 사람마다 편한 자세는 다르잖아요. (...) 디자이너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관심이 많아요. 어떤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자기도 모르게 하는 행동은 무엇인지 세심하게 관찰하지요. 덕분에 더 쓰기 좋은 키보드나 기발한 의자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본문 32쪽)

특히 생각을 디자인하는 것, 사람들의 행동을 디자인하는 것은 현직 디자이너이기도 한 내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머리로는 으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내용이지만 실제로 일을 하며 사용자를 얼마나 생각했는가 돌이켜봤을 때 반성이 되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예린이와 유진이가 디자인에 대한 사고의 폭을 확장하는 사이, 디자이너인 나는 나의 사고가 그간 얼마나 닫혀있었던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다시금 명심할 것, 디자인의 출발점은 언제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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