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참 오래 걸렸다. 읽다 말다 해서가 아니었다. 시간이 좀 많이 필요했다. 한참을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다시 돌아가 읽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보통은 그렇게 오래 걸리는 책은 옆으로 제쳐지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에 힘이 있었다. 정말이지 묘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한 권의 소설집을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박사랑의 소설집 <스크류바>에는 모두 열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문학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꽤 많았다. '#권태_이상'에는 최인훈의 <광장>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등 꽤나 다양한 작품이 등장하고, '높이에의 강요'에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바람의 책'은 <모래의 책>을 전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나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 속으로'는 김승옥의 <서울, 1968겨울>의 변주곡쯤 되겠고, '울음터'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등장한다. 그 외의 소설들은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실렸다. 개인적인 이야기란, 아주 사적인 이야기일수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작품도 쉬이 읽히지 않는 것이 없었고, 쉬이 읽히는 것이 없었다. (모두 좋았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돌려서 한다)
그래, 그러니까 이 책은 그렇다. 뭔가 잔뜩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속이 쉬이 읽히지 않는다. 그의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밤새 들었는데- 자고 일어나 생각해보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통 모르겠는, 그런 기분이랄까. 문학에 빗대고,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상에 빗대고, 사회 이슈에 빗대어도 도저히 빗대어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글 속에 있다. 그래서,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모두 어느 한 지점을 향해서 수렴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을 오래 붙잡게 한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