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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씽 (예담)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미세먼지 수치가 최악인 아침이었다. 창밖을 한참 동안이나 내려다봤지만 그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미세먼지 수치와 바깥 상황을 동시에 살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붉은 경고창이 무색하게 날씨는 맑았다. 초미세먼지는 그 입자가 너무 작아 날을 흐리게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못 미더웠고, 더 불안했다.
소설 <에브리씽 에브리씽>을 읽으면서는, 내내 그런 상태였다. 그러니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매디는 밖에 나갈 수 있지만 나갈 수 없다. 아니, 이제까지 나가지 않기를 선택해왔다. 밖은 너무도 위험하니까. 그런데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설령 목숨을 잃게 될지라도)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올리. 검정 티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은 죽음의 정령 같은 그 애는 첫눈에 매디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깥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으면서 나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건 쉽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별반 신경 쓰이지 않던 것들이 내 주의를 잡아끌었다. 바람이 나무를 건드리는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아침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더 또렷이 들렸다. 블라인드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네모난 햇살 조각들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하루 동안 햇살이 방 안에서 위치를 옮기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해의 방향을 보면 시간을 짐작할 수도 있었다. 내가 세상을 멀리하려 할수록 세상은 나에게 다가오기로 작정을 한 것만 같았다. (46쪽)
매디는 SCID라는 무척 유명하고도 희귀한 선천적 질환을 앓고 있다. 세상 모든 것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렇게 17년을 살았다. 그런 매디가 올리를 알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지고, 그 강렬한 감정을 어쩌지 못해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가 소설의 주를 이룬다. 사실, 그렇게 새롭다할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소설 <에브리씽 에브리씽>은 뭔가 특별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한다. 중간중간 매디와 올리가 주고받는 메시지가 그대로 보여지기도 하고, 올리가 보낸 메일을 같이 읽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매디가 보고 있는 웹페이지의 창이 그대로 옮겨졌고, 때로는 매디가 읽은 책의 간단 스포일러 서평이 실리기도 했다. 그 모든 장치가 독자로 하여금 '매디'가 될 수 있게 했다. 그러니까 매디를 이해하기 위해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매디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매디와 올리의 입술이 닿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몸을 움찔하게 된다.
그는 내 손을 가볍게 끌어당겼다. 그건 질문이었고, 나는 알았고, 우리 손의 기적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과 눈과 입술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기적을 지켜보았다. 그가 움직였던가? 아니면 내가 움직였던가? (163쪽)
뿐만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전부'를 이야기한다. 매디의 엄마는 전부를 걸어 딸을 지켰고, 매디는 전부를 걸어 올리를 사랑했다. 누군가의 전부가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내 전부를 건다는 것.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줄게,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지만,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큼은 아니다. 그 진실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 그 희망과 절망 사이의 간극이란.
때문에 소설은 빛난다. 어릴 적 가지고 놀다 다락방 구석에 버려둔 낡은 인형이 새 옷을 입고 나타난 것만 같다. 그렇게 환하게, 온몸의 세포가 다시 살아나듯 매디와 올리의 오늘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