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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 -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평점 :
"윤한봉이란 분이 어떤 분이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순결한 사람이야. 자기 자신에 아주 철저한 사람이고." (본문 352쪽)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김남주가 아내에게 한 말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순결하여 하얀 별과 같고 따뜻하여 봄 햇살과도 같아 우리는 그를 삶의 나침반이자 소외된 이들의 벗이라 일컬었으나 그는 다만 자신을 합수라 불리기를 바랐다'고(7쪽). 그의 별명 '합수'란 두 줄기 물이 합쳐진다는 뜻으로, 호남 지방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의 똥과 오줌이 합쳐진 똥거름을 말한다. 역사와 민중을 위해 인생을 바쳤노라고 말하는 이들은 많지만, 명예도 직위도 돈도 모두 마다하고 스스로 퇴비가 된 이는 드물다. 윤한봉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책을 받아들기 전에, 사실 그의 이름을 들어본 바 없었다. 5.18 민주화 운동의 마지막 수배자라면 어디선가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법도 한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낯선 이름이었다. 사실, 그의 이름보다 더 낯설었던 것은 책을 열자마자 쏟아진 찬사였다. "한봉이 형은 살아있는 예수야."라고 하지를 않나, "한국의 간디, 한국의 호찌민이지요."라고 하지를 않나. 마치 어느 종교집단의 교주를 대하는 듯한 그들의 언사에서 당황스러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대체 그는 누구인가.
저자는 발로 이 평전을 써냈다. 그의 가족은 물론이고, 이념을 같이했던 동지들, 미국에서의 생활도 직접 쫓았다. 집담회를 열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매회 20~30명씩 참석해 윤한봉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다듬어진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기구했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 이런 삶이 가능한가 싶었다. 그런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라면, 예수나 간디에 비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싶기도 했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철저했다. 한번 정한 원칙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려 했으나,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누구에게고 허리 숙여 사과했다. 윤한봉은 씨앗을 뿌리고 가꾸다가 스스로 거름이 되어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뿌리고 가꿨다고 해서 으스대거나 그걸 거둬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때문에 척박했던 환경에서도 한청련 활동이 제 목표대로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긴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가 환영 인파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다 기자회견장에 서서 던진 한마디는 "나는 영웅이 아닌 도망자일 뿐입니다. 명예가 아닌 멍에로 알고 살아가겠습니다. 퇴비처럼 짐꾼처럼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338쪽)"였다. 개인적 도피가 아니라 광주 운동권의 조직적 결의에 의한 망명이었건만, 후배들과 고난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