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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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9쪽)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132페이지의 짧은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의 여운은 결코 짧지 않다. 주인공 한탸의 지난 삼십오 년이 고스란히 베여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의 고백처럼 이어진다. 폐지 압축공인 그는 더럽고 끈적끈적한 지하실에서 녹색 버튼과 붉은색 버튼이 있는 작은 압축기와 도수가 꽤 높은 술로 인생을 보내왔다. 그의 삶은 분명 고독했지만, 암울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날마다 천장에서 쏟아져내리는 온갖 종류의 폐지 사이에서, 빛나는 어떤 것을 캐내는 것이 그 자부심의 근원이었다. 그렇게 그는 독서를 통해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는다.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10쪽). 문장들은 천천히 혈관으로 스며들어 그의 뇌와 심장을 적실뿐 아니라 더 깊숙한 곳까지도 비집고 들어온다. 그렇게 완전히 어떤 사상이 내 것이 될 때까지- 그는 읽고, 또 읽었다. 그래서일까, 녹색 버튼을 누르면 압축판이 전진하고, 붉은색 버튼을 누르면 후진하는 단순한 기계의 조작 사이에서도 어떤 철학적 기제가 읽힌다. 느릿느릿한 그의 움직임들 사이에서 예수와 노자가 각자의 언어를 이야기하고, 니체와 헤겔이 논쟁하는 장면 역시 흥미로웠다. (그것이 술에 의한 환상이라 하더라도)

그런 점에서, 어느 날 찾아온 사회주의 노동단원인 두 청년이 그의 탁자 위에 깨끗한 종이를 한 장 깔고 자신들의 우유병을 올려놓던 장면은 더없이 아팠다. 한탸의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이 내게도 전해져왔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독서'라는 행위의 기쁨
('읽는다는 것'과 좋은 책을 '발견한다는 것'의 기쁨)을 전하는 동시에, 견고하게 쌓아왔던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맞아야만 하는 서글픈 운명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가치 있는 무언가가 담긴 책이라면 분서의 화염 속에서도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진정한 책이라면 어김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것이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10-11쪽)

한탸는 청년들이 주는 굴욕감을 이기지 못하고, 새로운 삶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 단정 짓는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더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밝혀내자 대거 자살을 감행한 그 모든 수도사들처럼 그도 끝을 향한 선택지를 뽑아든다. 하지만, 그 선택에서마저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슬픈 선택의 순간에서 반짝하고 빛이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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