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제목은, 방점이 '공간'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자 작가의 인테리어'를 다룬 책은 아니다. 작가의 창작 공간, 아니 나아가서는 그녀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글쓰는 공간'을 들여다봤다. 취재가 아닌 사진과 자료를 통해 상상하는 방법으로(그래서인지 책 속의 방대한 '사진자료'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때 그 시절의 그녀들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나는 기분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글을 쓰기 전 그림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부터, 그의 글이 "구두점을 찍지 않고 반복되는 단어들이 굽이쳐 흐르는 듯"했다고 적는다. 결국 여자이기에 앞서 '작가'를, '작가의 삶'을 다뤘다.

그럼에도, 그들이 모두 '여자'였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일찍이 가사노동과 육아로 여자들은 사회생활에 제약이 컸고, 그것은 글쓰는 작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쓸 장소가 집에 없었거나, 난방 시설이 열악했거나, 이래저래 여건이 안 되었던 여성작가들은 카페나 도서관을 전전해야 했다. 어떤 이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꼭 알맞는 '글쓰는 장소'를 찾기도 했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그렇게 쓴 글로 돈을 벌어 자신만의 '글쓰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녀들 모두, 사회적 통념을 박살내고 작가로써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파리의 자그만 방 안에서 등나무 의자에 앉아 타자기로 이 글을 쓴다. 창문 너머로 정원이 보인다. 나는 벌써 1년이 넘도록 이 삭막한 거처에 살면서 일을 하고 있다. ... 내가 필요로 하는 단순함과 일시적인 고립감을 맛볼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장소다." -수잔 손택(타니아 슐리, 글쓰는 여자의 공간, 167쪽)

수잔 손택은 자신에게 글쓰기는 '차가운 호수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 처음에는 호수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뛰어들고 나면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두려움이나 걱정과 별개로, 손택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글을 쓰지는 않았단다. 단, 한번 글쓰기에 몰입하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노란색 종이에 연필로 천천히 글을 써내려가던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기분이 묘해졌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녀가 가끔 허리를 뒤로 젖히며 내다보았을 창문 너머의 정원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아, 내게도 작은 서재가 있었으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 내게도 서재 욕심이 있다. 신혼집을 꾸미면서 드레스룸과 서재를 겸한 방을 만들기는 했는데(내 취향을 듬뿍 담아 책상은 정말이지 널찍한 것으로 샀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니 책상에 앉을 시간이 좀처럼 없다. 수유하는 동안 수유쿠션위에 책을 올려놓고 짬짬히 책을 읽고 메모를 한다. 그렇게라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깊은 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그러다 토니 모리슨을 만났다. "아이들이 어려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과는 정반대입니다. 전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글을 전혀 쓰지 않았어요.(124쪽)" 그녀의 한 마디에 힘을 얻는다. 수유쿠션위면 어때. 지금의 내게는 그곳이 최적의 공간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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