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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허벅지 ㅣ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여자를 알게 됐을 때 가장 깜짝 놀랐던 게 뭐예요? 가르쳐주세요."
"허벅지였습니다."
"허벅지?"
"아, 여자의 허벅지가 이렇게 굵은 것이로구나. 처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굵고 하얬어요."
(다나베 세이코, 여자는 허벅지, 268쪽)
여자의 '성(性)'을 다룬 책은 많지만, 대체로 그런 책들은 남자들이 쓴다. 그러다보니 진짜 여자가 빠져있기 십상이다. 판타지적 오류로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쓴 책이라고 다 진짜 '여자의 성'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건조하고 이론적이어서 재미가 없거나 과도하게 낭만화되어 있어 같은 여자가 읽어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하되 불쾌하지 않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되 지적이게. 그런 글은 불가능한걸까.
제목부터 흥미로웠던 다나베 세이코의 <여자는 허벅지>. 연애소설 대가로 불리는 그녀가(그녀는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의 작가다) "여자라는 동물을 그렇게 몰라?"라는 문제의식에서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주간지 '슈칸분슌'에 연재한 칼럼 중 일부를 묶었다. 집필을 시작할 때 40대였던 저자는 1928년생. 그러니까 올해 88세의 할머니다. 70년대에 40대 여성이었던 그녀가 쓴 여자의 성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발랄하다. 솔직하고, 유쾌하고, 때로는 발칙하기까지하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문학성을 놓지 않았다. 호시탐탐 바람을 피워대며 언제 어디서나 미소녀를 갈망하는 중년의 '가모카 아저씨'를 등장시켜, 온전한 1인칭 장르인 에세이를 유쾌한 대담으로 변모시킨 것 역시 신의 한수. "아내들은 과거 귀족처럼 30세가 넘으면 후임에게 침소를 물려주고 퇴소식을 해야한다"는 가모카의 주장에 "후임은 아내가 지정하는게 귀족들의 전통이었다"고 쏘아붙이고, 이내 "우리 마누라는 불감증으로 지정할 게 뻔하다"며 두려워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담은 것 역시 재미나다.
두 사람이 벌이는 음담패설의 핑퐁은 불륜, 바람기, 월경, 정관수술 등 다양한 성적 주제를 넘나들지만,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여자의 성욕은 평생에 걸쳐 만물과 닿아있는 것으로, 남자처럼 좁고 깊게 응고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 "여자의 성욕은 남자처럼 좁고 깊게 응고돼 있는 것이 아니다. 침대 속뿐만 아니라 온갖 것에 넓게 퍼져 끝없이 이어져 있다. 남자에게 성욕은 주사기에 들어 있는 약간의 에센스이고, 여자에게 그것은 양치액처럼 희석해서 오래도록 쓰는 것이다. 넓고도 깊게 어디에나 이르러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여자의 성욕이다.(38쪽)" 한번쯤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열번쯤 끄덕이게 되는 그녀의 통찰력.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그녀의 음담패설이 단순한 음담패설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