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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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리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쓸 수밖에 없겠다. 먼저 사랑 이야기. 올여름은 내게 <킹더랜드> 와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이기도 했는데, 두 드라마의 종영이 남긴 헛헛함을 앨리스와 달드리씨가 완벽하게 채워주었다. (다 알면서도 속아줬다, 이번에도)(달드리씨와 구원, 문서하는 어딘지 모르게 닮았지)(누구라도 한눈에 반할 외모와 뛰어난 직업 능력을 가진 앨리스도 천사랑과 반지음을 자꾸 떠올리게 하고) 맞다. 이 이야기는 유쾌하고도 완벽한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우리는 꽤 초반부터 달드리씨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만, 여느 신데렐라 스토리를 읽을 때처럼 또 한 번 모른 척 지나간다. (그쪽만 셔츠에 양복 차림으로 쫙 빼입고 나는 동네 카페에나 쫓아온 사람 같은 몰골인데, 어쩌고저쩌고 투정 부리는 앨리스에게 "당신처럼 매혹적인 여성이 초대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사람한테 무슨 그런 말을. 당신은 눈길만 줘도 남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는데 어떤 인간이 시간 낭비하면서 당신 옷차림을 보고 있겠어요? 그런 걱정 같은 건 접어두고 제발 맛이나 음미해봐요."라고 말하는 플러팅 장인 달드리씨)



다른 하나는 이야기가 품고 있는 시대와 공간인데- 1950년 12월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2023년 8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썩 와닿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시간을 환기시킴으로써 그때 그들에게 남겨진 전후의 아픔을 맡도록 했다. 그것은 1915년,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오스만 제국 정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집단 살해된 일이다. (여전히 집단 학살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땐 너무 어렸고, 그래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앨리스가 그 일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듯이, 내게도 그 일은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그 사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앨리스는 꿈속 장면인 줄로만 알았던 기억을 만나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물론, 그때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앨리스와 달드리의 사랑 이야기는 재미있다. 하지만 하필 광복절에 이 소설을 읽은 것은- 독립을 꿈꾸었던 아르메니아인들과 한반도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았던 우리 선조들을 한 번 더 생각하라는 하늘의 뜻은 아닐까. (앨리스가 미심쩍은 점쟁이의 말을 내치지 못해 기어코 튀르키예로 가야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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