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종이 봉지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비룡소의 그림동화 303
헨리 콜 지음 / 비룡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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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넘기면 거대한 숲이 열린다. 그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 한눈에도 굵고, 곧게 뻗은 나무는 다음 페이지에서 베어지고 차에 실려 제지 공장으로 향한다. 잘게 잘리고, 뜨거운 열에 찌고. 겹겹의 공정을 거친 나무는 마침내 종이가, 그 가운데서도 종이 봉지가 되었다.


이 그림책 <작은 종이 봉지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는 이 종이 봉지와 아이의 특별한 인연을 담는다.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기 바로 전날,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사고 이 봉투를 받아들었다. 아이의 첫 도시락이 될 식재료를 사들고 왔던 그 봉투는 다음날, 아빠가 그려준 빨간 하트와 함께 도시락을 담은 봉투가 되었다. 아이는 종이봉투와 함께 성장했다. 종이봉투 안에 담긴 음식을 나눠먹으며 더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혼자 자는 방법을 배웠으며, 더 넓은 세상과 만났다. 하나였던 빨간 하트는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을 만나 두 개가 되었고, 사랑을 가득 쏟고도 부족한 아이를 만나면서 세 개가 되었다. 그렇게 켜켜이 시간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이 두터워지는 사이, 작은 종이봉투에도 뭉근한 시간이 새겨졌다. 부드러워질 대로 부드러워져 이제 천 같기도 한 종이봉투는 아이였던 주인공의 아버지와 함께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을 만큼의 오랜 시간. 이렇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거라면, 플라스틱이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작가 노트'를 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글에서 저자인 헨리 콜은 3년 동안 같은 종이 봉지에 도시락을 싸 갔던 경험을 쓰고 있다. 무려 700번 정도를 사용하고도 버리지 않고 한 살 어린 동생에게 물려주었다니, 어쩌면 종이 봉지는 조금 더 쓰임을 다했을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나의 쓸모에는 후한 점수를 주면서도- 쓸모가 없어지기도 전에 버렸던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함께,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지난 주말, 원주 '뮤지엄 산'의 종이박물관에 다녀왔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사람들은 어떻게 기록을 했던가. 또, 최초로 발명된 종이에 사람들은 무엇을 기록했던가, 오늘-우리에게 종이의 쓸모란 무엇인가, 나는 종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나에게 종이란 무엇인가 등등을 생각하다가 종이란 곧 기록이며, 이는 또 다시 삶과 치환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장의 종이가 한 사람의 삶이라면- 이 책이야말로 그것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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